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책, 증언대의 앵무새

위험한 트러피츠 [막(幕)뒤의 삐에로 (상) ]

최철미 2015. 6. 14. 07:58

□ 위험한 트러피츠

하늘로 나는 전파에는 교정의 지우개가 듣지 않는다. 개나리 진달래를 『개다리 진달래』로 봄의 서정시를 구탕에 말아버린다든지, 숲의 생리를 『술의 생리』로 빚어 내놓는다든지, …반·존슨을 전차의 앞뒤를 돌려놓듯「존·반슨」으로 오발한 다음 리트마스시험지처럼 빨개져서 나오면,
『병가상사야, 하지만 멋이 있게 틀려야해.』
손자까지 들먹이는 노괘한 선배의 가르침이었다.
민재호 씨가 유엔군 총사령부 방송에 계실 때 뉴스를 유창하게 해설하다가『이태리의 빠리 아니 블란서의 빠리 올시다.』했는데 그것은 에러가 아니고 친절한 주석이요 멋진 강조라고 감탄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로마제국에 태어났으면 네로가 되었을 분이 방송국장의 벼락감투를 쓰자 무단정치를 폈다.
권총을 휴대하고 경호원을 대동한 방송국장은 안하무인, 적재적소의 인사에 난도질을 하고 드라마의 원고를 결재하면서 왜 원고지 칸수를 다 메꾸지 않고 띄어 쓰느냐고 호통을 쳤으며 아나운서의 사소한 미스테이크를 결코 관용으로 다스리려 하지 않았다.
뉴스를 전하던 한 아나운서는 소련외상 모로토프의 이름에 어쩌다가 경칭을 붙여 버렸다. 정정하는 뜻으로 다시 한 번『소련외상 모르토프…』천천히 읽어 내려가는데 그놈의「씨」자가 날 파리처럼 또 따라 붙었다.
오오 하느님, 그 늙은 곰의 이름을 이번에는 성토하듯 아니 매도하듯 외쳐버렸다.
『모로토옷프 모로토프는…』줄타기와 같은 위기일발, 국장은 노발대발했으나 고의가 아니라 과실임이 밝혀져 제 2의 위기도 모면했다.
각하 칭호가 남용되던 시절, 적성국가의 VIP에 그 존칭이 무단 부착될까봐 전전긍긍한 사람은 없었을까?
자유대한은 과실에 대하여 지극히 너그럽다.
그러나 괴뢰치하의 평양방송 아나운서는 두목을 찬양하는 시「의로운 백성들」의 「의」자에 점을 하나 찍은 죄로 정말 시베리아의「외로운 백성」이 되어버렸다고 강찬선 아나운서는 회고하고 있다.
정책기조연설에서 공화당을 공산당이라고 오독한 야당 당수는『실례했습니다.』라는 수줍은 사과로 긴장된 무드에 해빙의 봄바람을 불어 넣었지만 화할「화」와 낳을「산」을 혼동하는 날이면 적어도 좌천은 각오해야 한다.
아나운싱도 일종의 트러피츠인가?
김일휴를 김일체로 읽어 윤길구 과장의『여어보! 당신』을 들은 이후 성명에 관한 한, 징크스가 따랐던 강찬선 방송관은 5월 16일 아침 9시 뉴스에 군사혁명위원회 포고를 낭독하며 위원장의 다음 이름을『육군소장 박정렬』로 오독했다.
유인물의 희미한 글씨 때문에 빛날「희」를 매울「렬」로 착각한 것인데 옆에 선 공보장교의『희』라는 깨우침에『실례했습니다, 육군소장 박정희』로 곧 정정했다. 겸손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록키」산 언저리의 물줄기는 동과 서로 갈라지지만 본류는 하나, 시간이 그 방위를 결정한다.
그리고 시간은 묵은 것을 털어버린다.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신앙하는 삐에로들은 오늘도 막 뒤에서 분초와 다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