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숭이 임금님 벌거숭이 임금님 하늘과 땅이 갈리던 태초에 나는 벌거숭이었다 그러나 커가면서 알게 되었다 나 역시 가식과 허위로 수를 놓은 옷감을 두르고 허영으로 장식한 관을 쓰고 살아야 함을 언젠가는 다시 벌거숭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고 살아야 함을 아무도 꽃들에게 옷을 입히려 들.. 딸, 철미의 시모음 /그 이전의 고독 2014.08.11
슬픈 노래 세월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지나면, 더 나이를 먹으면, 모든 게 이해가 될 거야.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모든 걸 감싸 안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 하면서, 마치 남의 일인 양 가볍게 흘러.. 딸, 철미의 시모음 /그 이전의 고독 2013.12.15
원죄의 회상 원죄의 회상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 나는 하나의 알이었다 날 孕胎한 어미새는 미처 부화가 끝나기도 전에 날아가 버리고 (그녀 역시 孵化가 덜 끝난 철새였기에) 돌아갈 母胎가 없는 나는 밤마다 부화등을 켜고 깨어져나간 껍질을 끌어 모아 안에서부터 붙여나가는 고된 작업을 계속한다.. 딸, 철미의 시모음 /그 이전의 고독 2013.12.06
바람은 바람은 바람이 인다 아득한 과거의 기억 속 밤하늘 별빛처럼 빛나던 작은 소망 저 혼자 타오르다 타오르다가 뼛가루마냥 하얗게 사위어 한 줌 재로 남아 묻혀 있다가 차마 잠들지 못하고 소리 없이 휘도는 조용한 갈망 그 기나긴 여운 8-1-2001 딸, 철미의 시모음 /그 이전의 고독 2013.12.06
내 운명에게 내 운명에게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떠나 보내고 나는 홀로 남아 그대를 기다리지 내 행복이 그리도 탐이 나던가 내 사랑이 그리도 샘이 나던가 난 이제 너무 지쳐 누군가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네 더 이상 날 사랑해 줄 사람도 없고 그대는 이런 내게서 무얼 더 원하나 이제 그만 떠나가 .. 딸, 철미의 시모음 /그 이전의 고독 2013.12.04
산안개 산안개 산등성이에 머무는 뽀얀 안개는 누구의 한숨일까 산허리를 휘감아 촉촉히 밴 눈물에 흐려지는 눈시울 아스라한 유년의 추억도 안개처럼 스러져갈까 골짜기마다 서린 그리움의 흔적이 살 속 깊이 스며들어 뼈마디까지 시리게 하더니 산은 하얀 슬픔의 띠를 두르고 저 혼자 깊어만.. 딸, 철미의 시모음 /그 이전의 고독 2013.12.04
용서 용서 당신께서 주신 가르침이 왜 이리도 행하기엔 힘이 듭니까 당신께서 보여주신 사랑으로 먼저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10-18-96 딸, 철미의 시모음 /그 이전의 고독 2013.12.04
편지 편지 너에게 편지를 쓴다 친구도 연인도 아닌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움의 자락들은 눈가의 잔주름 속에 접어두고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은. 희끗해진 머리카락 속에 묻어두고 이 밤을 밝혀 편지를 쓴다 먼 기억 속에 서 있는 네에게 7-30-96 딸, 철미의 시모음 /그 이전의 고독 2013.12.04
외로운 이에게 외로운 이에게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만한 사람이 없다며 못내 아쉬워하는 외로운 이여 그대는 그대의 견고한 성 안에서 성문을 굳게 잠그고 아무도 들이려하지 않네 그대의 고매한 성곽은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아무도 닿을 수가 없네 그대가 성문을 열고 그대의 외로운 이웃을 찾아 나.. 딸, 철미의 시모음 /그 이전의 고독 2013.12.04
그리움 그리움 낡고 가느다란 새끼줄 하나를 붙잡고 살아왔지 안으로 안으로만 흘린 눈물 방울들이 긴 고드름이 되어 심장에 매달리고 내게 남은 것이라곤 비인 가슴 동그란 그리움 하나 7-28-94 딸, 철미의 시모음 /그 이전의 고독 2013.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