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철미의 시모음 /믿음의 축복

밤엔

최철미 2013. 12. 4. 09:32



밤엔

 

공연이 끝나면

천천히 내려오는

무대의 막처럼

 

당신의 깊은 눈동자같은

땅거미가

가만가만 내려와

온 세상을 포근히 덮어버리는 밤

 

밤엔 아무도 드러나지 않아

모두 다 똑같이

당신의 옷자락 속으로

꼭꼭 숨어버리는 걸

 

그리고선

곤한 눈꺼풀을 마주 붙이고

하냥 죽는 연습을 하다가

당신이 나래를 펴는

이른 새벽이면

무덤을 열고 나온 당신처럼

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부비며 기지개를 켜지

 

당신의 품안에서

고요히 침잠할 수 있는

아늑한 밤의 안식

 

그래서 나는

밤이 좋아

4-2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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