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4.2.19

최철미 2014. 6. 15. 12:09

(2.19)
우울한 일요일이다. 언니 친구들이 떼를 지어 우르르 몰려와 무엇이 그리도 신이 나는지 깔깔대며 웃는다. 나는 어리다고 아예 축에 끼워주지도 않는다. 할 수 없지 뭐. 방문 걸어 잠그고 음악이나 듣는 수밖에. 아빠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인 마이마이. 서 부장님이 오셔서 아빠의 유품들을 차곡차곡 정리하셨다. 가구들은 모조리 팔아치우고 이 집은 전세 놓고…. 언니랑 아저씨는 무언지 열심히 궁리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김 용범 선생님이 오셨다. 그 선생님의 성격대로 오자마자 실컷 떠들어댄다. 휴우…. 저 수다는…. 여자로 태어났어도 흉잡힐 정도였다. 나보고는 무슨 어려운 일 있으면 전화하라는데. 나 그 선생님이 아무래도 장난으로밖에 대해지질 않는다. 하긴 겨우 세 번 만났으니깐 그럴 만도 해. 영화나 보며 달래야지, 뭐. 킬킬. 덕분에 횡재하는구나. 한바탕 떠들고 돌아들 가자 집안이 썰렁했다. TV에서 떠들어대는 말도 귀에 거슬리기만 하다. 이제 1학년도 거의 끝나 가는데…. 학기말 방학 때는 뭘 한담. 벌써부터 걱정이다. 겨우 1주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무언가 해야 할 텐데 말이다. 언니의 말을 들어보면 이삿짐 챙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거란다. 난 서 부장님 댁에 가 있게 되는 것이다. 남의 집살이가 어련하랴. 시집살이지. 남편은 그럼 누굴까. 언니 가로되, “남편은 멀리 떠났다고 생각해라.” 어유. 무슨 재미야. 하긴, 찬기 네가 있으니깐. 안 그래? 찬기야 넌 내 남편이라고. 뭐? 결혼식? 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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