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군사에」의 열망
모세경의 첫 장을 보면 태초에 말이 있었다니 원조는 물론 하나님, 그 창세기의 입놀림을 흉내 내는 인류―아테네의 광장에서 목에 핏대를 올리던 쏘피스트, 류우트를 손에 들고 전설을 읊었던 유음 시인, 광야에서 외치던 복음의 전도자들이 열성조에 든다.
먹고 사는 수단으로부터 새로운 업태로 승화시킨 것은 말코니라는 과학자, 줄 없는 전화를 만들었으니 거기 매달리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그래서 직업이 된 아나운서에 언어 중추가 발달된 족속들이 젊음을 건다.
목소리와 빵을 바꾸는 이 성대노동자들을 일본에서는 초기에「고우죠오야」라고 부른 일이 있다. 말쟁이라는 뜻, 그러나 곧「아나운서」로 호칭되었고 이 땅에 소리의 공장이 세워진 뒤 그 외래어는 이의 없이 받아들여졌다. 이두문자로 표기하려는 시골 유생과 한결같이「변사」로 부르던 이승만 박사를 제외하고는….
정작 말쟁이들은「아나군사」라 자칭하며「싸홈」의 고달픔을 스스로 달랜다.
벤·헤넷카인가 하는 미국 튤사 대학의 교수는 아나운서의 자격을 건강, 교양의 두 가지로 규정했다.
슬픈 얘기를 하더라도 건강한 목소리는 불쾌감을 주지 않는다는 것과 교양이 없으면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그 주장인데 상식을 재확인한 셈, 인간관계가 중시되면서 거기에 인격이라는 또 하나의 요소가 첨가되었다.
니이체의 이른바 초인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표준형 인간이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요건, 즉 건강한 신체, 원만한 인격, 풍부한 교양 등의 부분품 없이 완전한 토킹·머신은 조립되지 않는다는 이상론이 제기된다.
조종사 선발기준 같은 이 어려운 조건들을 선행하는데 있다. 그것은 마음가짐, 아나운서의 영토를 향해 발사될 로켓은 제 1 제 2 제 3 단계 모두 열망이라는 연료로 채워야 한다.
아나운서가 되려는 목표, 나아가서 청취 인구를 정복하려는 궁극 목표에의 도달 여부는 그 열망의 강도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등용문은 좁다.
우선「건강이 제일」이라는 통념은 아나운서에게 어떠한 계율 보다 냉혹한 제 1조, 맑고 깨끗한 시간처리와 건전한 정신의 향기는 건강에서만 우러난다.
「말은 곧 사람」이라는 격언의 의미는 전파의 메카니즘 속에서 상실되지는 않는다.
마이크로폰은 인간성을 여과하는 그릇, 인격 수양은 아나운서의 당위이다.
그리고「Something Everything에 통달하라.」는 모든 사물에 대한 개념의 부자가 되라는 것인데 양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제약이 있어 마땅하다.
그러나 이 요건들은 아직 소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지성으로 갈고 예지로 닦는 연금의 과정에서 오랜 사색과 진실에의 추구가 끊임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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