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고스와의 연애
말은 사상을 번역하는 무기, 사상(내용)을 충실하게 하는 한편 무기(표현)의 힘을 향상시키는 부단한 연찬이 요구된다.
그래야만 내용과 표현의 일치를 기하고 지식과 기술을 병행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해적판으로 소개되었던 NHK의「아나운스 독본」은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 어쩐지 기분이 좋고 어쩐지 삶이 즐거워진다는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마치 좋은 연극이나 명화를 감상한 뒷맛처럼 생명이 넘치는 생활을 동경하게 되는 아나운스라면 아나운서의 존재의의는 사회적 입장에서도 매우 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른바 솜씨 있는 아나운스나 유창한 아나운스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구김살 없이 명량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아나운스는 아나운서의 그러한 생활의 바탕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마이크로폰은 어떠한 생활의 그늘로 명확하게 찍어낸다. 아무리 허세를 부려도 임시변통은 임시변통, 진실은 물방울처럼 스며나온다. 따라서 아나운서는 언제나 행복하고 밝은 생활 속에 있지 않으면 안 되며 애써 그러한 경지에 이르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현해탄 이쪽에도 통용되는 진리, 다만 엥겔계수가 높아 적용이 안 될 뿐이다.
건강한 신체는 보다 천부의 것, 그러나 인격은 후천적으로 보완되고 지식의 함양은 교육과 노력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청취자는 아나운서의 묘사상에 의존한다는 점과 아나운서의 이해도가 곧 청취자의 이해의 한계가 된다는 점에서 무지와 무식은 아나운서에게 공산당처럼 두려운 적, 아나운서 테스트에서 상식 일반에 역점을 두는 소이가 거기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여러 부문은 물론 미녀의 의상에서 야수의 속성에 이르기까지 엷고 넓게 알아야 하는 무소부지의 컴먼·센스는 다른 직역에서보다 훨씬 더 활용되는 절대적인 도구이다.
개인차의 다소를 불문하고 목소리의 단련은 언젠가 한도에 다다른다. 그리고 감가상각 같은 퇴조의 위험이 끊임없이 따른다.
한 사람의 아나운서가 쌓아 올릴 수 있었던 빛나는 성―능력의 한계를 그대로 견고히 유지하느냐와 함께 그 한계 이상의 선으로 승화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열쇠는 그 개인의 지성과 양식의 재고량에 달려있다.
그것은 아나운서에게 요구되는 계도적인 입장 이전에 하나의 전달매체로서 존립하기 위한 필수 아미노산 같은 영양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과 함께 지식을 병행시켜야 한다는 의미는 날로 깊어간다.
올·마이티로부터 기능의 전문화로 발전해가는 오늘의 추세는 한 곳을 파는 심화작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자유스러운 아카데미인 아나운서 강습 기간에는 말하는 기술의 연마와 함께 로고스와의 연애를 권장하며 두 무게를 같은 천평에 단다.
이와 같은 커리큘럼을 전제로 한 적성검사에서는 맑은 소리보다는 개성 있는 소리, 개성 있는 소리보다는 교양미 풍부한 소리가 높게 평가되는 것이 당연하며 그 연원을 측정하려는 시험문제는 늘 까다롭고 광범위하다.
「10자매」는 딸이 많다는 뜻,「USOM」은 미국의 전매청,「타산지석」은 산에 가면 돌이 많다는 한문숙어,「안익태」는 국태민안을 말하는 것이라고 단정해 버린 이른바 진답 기답에서는 인간의 사유가 얼마나 복잡다기한가를 통감하게 되는데 흔히 입문서의 말미에 페이지를 채워 놓는 용어해설과는 다른 의미로 1961년 5월 시행 방송요원 채용시험 상식문제 답안을 표본으로 분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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