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책, 증언대의 앵무새

살아서 돌아오라 [아나운서의 적]

최철미 2015. 7. 4. 15:33

□ 살아서 돌아오라

성인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할 이 오답 자들은 물론 낙엽처럼 떨어져 갔겠으나 그 망령은 아직도 합격자의 영광을 침노하고 아나운서의 명예를 갉아 먹는다.
『본 방송국에서는 외신번역사를 모집합니다. 응모자격은 병역을 필한 대한민국 남자, 과목은 영문국탁 국문영탁….』
처음으로 국보를 하던 신인 K는 목탁 같은 소리로 통변할 역 자가「말씀 언(言)변」인지「쇠(金)변」인지 분간하지 않고 뚜들겨댔다.
『스튜디오 안에 들어가면 언제나 넘버원이라는 자신, 스튜디오 밖에서는 항상 넘버 텐이라는 겸손을 지니라.』는 강습시간의 교훈을 그는 잘못 실천한 것이다.
K의 오독은 사뭇 연쇄적, 며칠 후 처음으로「지방 소식」을 전하면서,
『오늘은 한식, 망하리로 가는 길은 성묘객으로 붐비고 있습니다.』
망우리를 망하리로 읽은 K는「근심 우(憂)」를 「여름 하(夏)」로 착각했다기보다는 공동묘지의 이름에서 곧 인생의 멸망을 연상했는지도 모른다.
스포츠 캐스터로 성장한 K는 전국 체육대회 폐회식 실황을 중계하며 또 한 번 최소제를 뿌렸다.
『지금 선수들 서서히 퇴장하고 있습니다. 대회기를 받쳐 든 보이스카우트 걸을 선두로 메인스타디움을 돌아나가고 있습니다.』
걸스카우트의 존재를 몰랐던 아나운서는「보이스카우트 걸」이라는 M+W소년단을 간단히 창설했던 것이다.
『존함이 누구십니까?』
『서울지방의 기온은 0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같이 빈발하는 어법위반과 함께 아직도『하프라인 선상』『뒤로 빽 패스』『넘버○○번』같은 중복이 스포츠 아나운서의 매끄러운 실러블에 섞인다.
『마침내 불어오는 가을의 훈풍 속에…』를 애음하던 Y아나운서는「마침내」와「때마침」이 혼동된 것과 훈풍은 초여름에만 분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이 페레그라프와 과감히 결별했는데 자성(自省)은 아나운서에게「빛과 소금」이다.
애드리브가 주 무기인 운동중계는 그대로 아나운서의 두뇌 전시장, 자성할 줄 모르는 양식 결핍증의 아나운서는 늘 멘탈 테스트를 받는 셈이다.
국기와 국가의 존엄을, 흥분한 아나운서는 자칫 흐리기 쉽다. 이른바「4각의 링」에 핏발 선 눈들이 집중되면 스포츠 캐스터도 분위기에 말리는 것일까?
헤비급 타이틀 매치에서「성조기여 영원 하라」가 울려 나오자『미국의 애국가』라고 한 사람이 있는데 올림픽 권투 결승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넌센스,
『스탠드에는 우리나라 태극기와 일본의 태극기가 나란히 꽂혀 있습니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기 전 스포츠 교류가 활발해지던 어느 날, 농구경기를 중계하던 R아나운서는,
『일장기와 나란히 나부끼는 태극기, 우리 대한의 태극기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하고 편시를 자랑하며 애국자연 하더니 일본팀의 패색이 짙어지자 마침내 오버액션,
『일본 선수들 이제 하품을 물고 보따리를 싸고 비행기 타는 일만 남았습니다.』
냉정한 객관자여야 할 중계 아나운서가 승패에의 집착을 노정하며 국가를 대표한 응원단장 노릇을 당위로 여기는 풍조는 언제나 가셔질 것인가?
신라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시단에만 있는 게 아니다.
화랑의 5계를 근대경기에 자주 인용하는 한 아나운서는 천 년 전의 신라정신을 부르짖는 그 입으로부터 10 센티도 떨어지지 않은 신체기관의 이름에도 밝지 못하다.
권투경기에서 선수가 등을 돌려 배면이 보이면 때를 만났다는 듯 되풀이하는 전매특허의 난해 시,
『지금 장(?)을 등진 선수가 ○○○선수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이「장」에 해당하는 낱말을 찾을 수 없다. 설마 장(腸)이나 장(臟)은 아니겠지….
난해시의 애송자는 동요도 즐겨 삽입한다. 파월장병 환송식을 중계할 때『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라는 동요「꽃밭」을 격양된 목소리로 읊어 내리며 바야흐로 월남으로 떠나는 장병들을 배도 타기 전에 홈씨크로 사로잡더니
『어버이 없는 자식이 어디 있으며 자식 없는 어버이가 어디 있겠습니까?』라는 새삼스런 부자유친 해설과『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는』어머님의 은혜를 늘어놓으며 이별의 슬픔을 돋구려 했다.
환송식이 절정에 이르자 마침내 중계아나운서는 준비해 온 마스코트를 소리 높여 뿌려댔다.
『살아서 돌아오라! 살아서 돌아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