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책, 증언대의 앵무새

최후의 검열관 [아나운서의 적]

최철미 2015. 7. 4. 15:35

□ 최후의 검열관

변동환율제가 실시되었을 때 뉴스 원고는 1달러를 늘「한 딸라」로 기술하며 한미친선을 돈독히 했고 아나운서들도 이를 비판 없이 받아드렸다.
환율은 255대 1, 아나운서실장은 즉흥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고문을 계시했다.
『한 딸라로 발음하는 사람에게는 이백 쉰다섯 원의 벌금을 받겠습니다.』
벌금이 무서웠는지「한 딸라」는 곧「1딸라」로 바로 잡혔다.
알약을 선전하는 CM에『여섯 정에 100원』이라는 게 있다.
「여섯 알」이나「여섯 타브렛트」라고 발음하지 않는 그 혀는「세촌」인가 아니면「삼치」인가?
언니를 찾아 올라와 비극을 만난 처녀의 이야기를 보도하면서 뉴스원고는 또「5촌 형제」라는 희한한 촌수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월간「방송윤리」48호는 주의환기 47호로 다음과 같은 대화를 게재하고 있다.
아나『…세분 할아버지께선 사돈 간이라는데 어느 할아버님이 아드님 쪽이고 어느 할아버님이 따님 쪽인지?』
노인『내가 안사돈입니다.』
아나『…그러면 이쪽이 수사돈이 되시겠군요?』
바깥사돈이 수사돈이면 안사돈은 따라서 암사돈, 점잖은 노인장들은 무대에 올라와 인간이전의 자웅으로 구별되었다.
잘못을 저지르면 곧 조지 워싱턴처럼 용서를 빈다. 속칭「사과 멘트」,
『여러분에게 정중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하는 익스큐스는 상금 성행되고 있는데 그『정중한』은 아가사창인가 사가아창인가?
체신주간에 국제 전신전화국 특설 스튜디오에 출장한 여자 아나운서 하나는 레코드 곡목이 바뀌자 짜증을 내며 사과멘트를 넣었다.
『레코드를 건 엔지니어가 멍청해서 그렇습니다.』
병무행정이 병사 구 사령부 소관이었을 때 하루는 사령관의 엄중항의가 있었다. 방송국이 병역기피를 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 곧 조사해 보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책임자는 녹음기에 문제의 테이프를 걸었다.
교양 프로그램에 삽입된 그 공공 스폿트는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
『여러분 병역을 기필하시기 바랍니다.』
「기필」이란 부사의 기필, 실로 놀라운 문장으로 경악을 금치 못할 기계적인 낭독이었다.
『군대 나간 사람들의 명복을 빈다.』는 위문편지는 왜 못 들었을까? 담당자는『목숨 명』『복 복』의 명복이라고 우기고 있었다.
명복과 무운장구가 비슷하다고 생각한 아나운서는 통신병 출신의 예비역 사관 R, 리퀘스트 엽서에 적힌「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낭송한 다음 옆에 앉은 여자 아나운서에게 동의를 구했다.
『김소월의 시죠?』
『네! 유명한 서정시예요』
영랑이 얼마나 울었을까?
R은「마음의 샘터」에서도 히트를 날렸다.
『행복은 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유쾌하게 살아서 복을 부르는 수밖에 없다. 권력이나 모략으로 얻은 부귀나 영화는 화병에 꽂은 꽃과 같다. 뿌리가 없으니 얼마 가랴?…채근담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 성은 채가고 이름은 근담이 그렇게 좋은 이름도 없다.
『오늘 창경원에는 날개가 8센티나 되는 코끼리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남아연방을 방문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은 독수리를 타고 즐겼습니다.』
「어린이 신문」을 전하던 여자 아나운서는 깜짝 놀랐다.
『박수 같은 우레』를 받아야 할 낱말의 치환, 독수리와 코끼리는 자리바꿈을 했던 것이었다.
물론 집필자의 잘못이 1차적이다.
그러나 아나운서는 토킹 머신이어야 할 것인가?
방송극의 출연자를 소개하는 배역표의 말미에 성우 하나는 연출자에게 품는 신앙 같은 것을 표백해 놓은 일이 있다.
『…여기 연출에는 사계의 권위자○○○씨입니다.』
이 자화자찬은 사계의 권위자가 아닌 읽는 기계 신인 아나운서의 입으로 on AIR, 문제가 된 나머지『멘트』를 다듬어도 좋다는 아나운서의 자유의 폭이 조금은 넓어졌었다.
서무과에서 제 2방송과로 전보된 신인 프로듀서는 첫 출근 일에 문서 품의하던 해서로 대북방송의 아나운스 멘트에 다음과 같이 자탄자가의 주석을 붙여 놓았다.
『면트, 공산당의 내막을 폭로함….』
「면트」는 참으로 유출유기,
『기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라는 초노급편 감개무량을 비롯해서『살을 어이는 더위』라는 빙탄불상용,『보리 위에 싹이 트고』같은 이모작,『태풍 피해민들에게 사의를 표한다』는 비례가 있는가 하면『선거지간 同安』『서울의 밤 距離』같은 표음문자도 횡행한다.
음은 같지만「窒素肥料」를 육달월 변에 쓰는 노총각 스크립터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정계는 아나운서, 양식의 지우개를 든 최후의 검열관 이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