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로운 베르테르의 모정
귀엽고 발랄했던 청년 이강석은 남산연주소를 오르내리는 동안 큐피드의 화살을 맞았다.
거의 사계에 걸치는 동안 이 귀하신 몸의 가슴에 모정의 꽃피는 나무를 자라게 한 아가씨는 민병연이라는 평민의 딸, 해맑은 얼굴, 넘쳐흐르는 천진, 기계와 같은 정확성, 이러한 미스 민의 총화에서 롯데를 느낀 것일까?
자가용 777번이나 1000번의 카 라디오에서 양부의 부르심을 받을 때는 얼굴을 찌푸리던 그도 남산 언저리에서는 언제나 웃었다.
보병학교에서 L19로 돌아 온 그는 경무대 보다 먼저 방송국에 들러 카키 빛 군복의 먼지를 지휘봉으로 탁탁 털며 실눈으로 미스민은 찾았다.
부친상을 당해 그녀는 없었다.
무개 찝차를 빈소로 몰아 그가 조문을 했다는 소식은 뉴스 속의 뉴스, 지각 한번 하지 않는 근면과 성실로 아나운서실 회계과장의 자리에 앉았던 민병연 양은 마침내 한국은행의 한낱 행원으로 격하되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대통령의 연척인 심 씨 집안으로 출가했다.
외로운 베르테르는 정치에 몰려 인생조퇴, 그의 죽음은 슬펐다.
국고에 환부된 이기붕 씨의 부정축재 21억 환을 합해 총 29억 환의 예산으로 서울시가 3대 공사를 기공한 것은 아직도 단기연호를 쓰던 4294년 8월 3일, 국토건설사업이 신속 과감히 수행되던 혁명 초기였다.
코리아의 관문인 김포 하이웨이 확장을 비롯해서 연희 홍제동간도로 신설, 서울시내 보도포장공사가 그 내역, 국민의 고혈이 다시 국민의 땅으로 되돌아오는 국가재건의 메아리를 HLKA는 중계 방송했다.
기공식의 식순에는 윤보선 대통령,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박정희장군, 송요찬 내각수반의 치사가 들어있어 과도기의 서열이 역사적으로 회동한 식전이었다.
국무원 사무처 공보국 제정인「국토건설대의 노래」가 끝나자 VIP들은 양화교 앞 식장으로부터 약 70미터 남짓 떨어진 기공현장으로 걸어갔다.
길을 넓히기 위해 한강가의 둔덕 하나를 무너뜨릴 시폭의 버튼을 누르고 시토의 첫 삽질을 하려는 것이었다.
이동중계를 계산에 넣지 않아 라디오 카는 기공현장에 고정되어 있었고 아나운서는 마이크로폰의 줄을 끌며 귀빈들을 따랐다.
8월의 햇빛이 냇물에 금 비늘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해면이 물을 빨아들이듯 길은 문명을 빨아들이는 것, 일차선반의 도로가 사차선이 하이웨이로 늘어나면 국제공항으로부터 세계를 받아들이는 코스와 우리의 자랑을 수출하는 통로가 활짝 트이는 것입니다.』
노예가 사슬을 끌 듯 마이크 코드를 질질 끌며 도로확장에 감격하던 아나운서는 길 가운데 멈칫 섰다.
줄이 짧은 것이다.
중계차까지는 앞으로 50미터, 참으로 아득한 거리, 팽개치고 뛰었다.
시속 20마일…할딱이는 숨으로 우선 자조 섞인 한마디, 『본 아나운서 단거리 경주를 하는 동안 공백이 생긴 점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 기공식장으로부터 현장까지는 100미터나 떨어져 있습니다.』하고 30미터나 거짓말을 보태며 발파대에 접근하러 발돋움 할 때 버튼이 눌러졌다.
폭약을 어떻게 장전한 것일까?
발파광경을 포착하려고 재빨리 앞으로 나간 촬영기사들은 흙덩이를 뒤집어쓰고 귀빈들도 모래알 세례를 받았다.
앞으로는 60마일로 달릴 수 있는 길에 엔진을 걸며 중계차 운전수는 아나운서를 달랬다.
『미스터 최는 깨끗 하구먼.』
그리고 핸들을 잡으며 내뱉었다.
『이기붕의 귀신이 살아 있나베.』
2년 2개월 후 준공식의 식순은 간소했고 기공식에 나왔던 몇몇 정치가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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