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책, 증언대의 앵무새

오보와 타부 [안테나 밑 유사]

최철미 2015. 7. 4. 15:40

□ 오보와 타부

이기붕 일가 자결사건에 관한 의혹을 풀기 위해서 당국은 이례적으로 시체 안치소를 기자들에게 공개했었는데 <해방 20년사>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매장된 이기붕의 무덤은 그 후 몇 번 파헤쳐졌던 것인데 이는 풍설에 이기붕 일가가 죽지 않았다는 말이 떠돌아 확인을 하려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
그런데 교수형을 받은 부정선거 원흉 가운데 한 사람이 형장에 가기 전 마지막 고회에서 이기붕 일가의 자결 설을 뒤엎고 타살에 관여한 죄를 남김없이 털어 놓았다는 루머라 하기에는 너무나 신빙도 짙은 얘기가 법조계의 일각에서 흘러나온 일이 있다.
자결설을 번복할 유력한 증인들은 죽었고 사자에겐 입이 없다.
이기붕일가 사건으로부터 꼭 1년 후, 영구 미제 된 사건이 일어났다.
자살이냐? 타살이냐? 또는 약물중독사냐?
홍일점 판사 황윤석 여사의 의문의 죽음을 둘러싸고 신문의 사회면이 추리소설처럼 엉켰을 때 3시 뉴스의 스튜디오에 한 장의 속필 원고가 전해졌다.
『특종이야 특종! 꼭 내야 돼』
아나운서의 눈에도 그것은 확실히 스쿠우프였다.
『황윤석 판사의 사인이 규명되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겠습니다. 황윤석 판사의 사인이 규명되었습니다. 시체 검안 결과 종류미상의 약물중독임이 밝혀졌는데 한 신빙할만한 소식통은 그 약물이 청산가리라고 말했습니다.』
문책은 법원출입 홍길두 기자, 셜록 홈즈에 심취했었던 홍 기자는 수사관들이 수근 거리는 소리에서『약물 운운』을 캐치, 약물이라면 청산가리일 거라고 속단하고 3시 3분전에 송고했던 것이다.
이 특종기자는 수사관의 신문을 받았다. 신빙할만한 소식통은 누구냐? 동료들도 소스를 탐색하려 했다.
오보사건은 확대되고 청산가리 중독사라는 근거를 대라고 수사관은 날카롭게 추궁했다.
홍 기자는 작은 고추, 맵기로 이름난 베테랑,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필사의 반격을 가했다.
『아니 그럼 청산가리가 아니라는 근거가 어디 있소?』
지금도 얼룩진 그의 기자수첩에는 퀘스쳔 마크 하나가 그려 있다.
미국 NBC의「방송의 일반적 기준에 관한 내규」에는 모든 사람이 다 알 정도로 지명도가 높지 않는 인사의 자살기사는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자살에도 네임 배류가 있어야 하는가?
자살기사는 만인평등하게 다루면서도 한국의 방송에는 극단적인 표현과 몇 개의 이의동음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여수, 순천 반란사건이 발발했던 정부수립 초창기, 중앙청 출입 K기자는 공보처에서 발표한 반란사건 진상의 아이템을 방송용으로 바꿔 썼다.
살인, 강도, 방화, 강간 등 열거된 죄목을 원문대로 인용하지 않고『갖은 만행을 다 했다』로 어렌지 한 것이 말썽, 결국 K기자는 사표제출을 권고 받았고 끝내 구제되지 않았다.
K기자는 사상이 건전한 리베라리스트, 긴박한 국내정세가 방송의 타부를 앞지른 것이다.
「남반부」「인민」「동무」는 정치적 이유에서 기피되고 국경을 넘는다. 선수권을 지닌다는 뜻의 단어도 다른 말로 위생처리 된다.
「전량」이 자음접변에 따라「절량」으로 발음되니「전체량」으로 바꿔 써야 한다는 타부는 70년대에 이르러서는 깨뜨러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