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철미의 이야기 /Letters to My Son

2017 세모에

최철미 2017. 12. 26. 16:22

A는 나보다 서너 살 위인 나의 오랜 친구다. 이십 여 년전 A가 미용사 자격증 시험을 볼 때 통역사 노릇을 해 주었다. 다행히 A는 합격을 해서 미용사가 되었고 그녀는 내가 (그 때 전혀 관심도 없는 미용 교과서를 공부해 가며) 통역사 노릇해 준 것을 두고두고 고마워한다. 어제는 2017년의 마지막 날.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다니러 가서 모처럼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A가 근처 미국 교회에 가보고 싶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 건지 Christian Music Concert 에 온 건지 분간하기 힘든 대형 교회의 열린 예배. 아마 나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자리의 A는 딸들에게 보낸다고 열심히 예배를 녹화하고 있었다. 아, 그래서 여기 오자고 했구나...  예배가 끝나고 A의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A의 친구인 H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H는 지금 타주에 산다. 서로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고 전화를 끊은 후 A가 말했다.  우리, H 대신 Grace를 보러 가요...


Grace가 그렇게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Grace는 당시 근처 대도시에 있는 직업 학교에서 간호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어느 정신병자가 분풀이로 무작위로 쏜 총에 맞아 무려 일곱 명이 죽고 세 명이 다치는 참사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Grace 였다.  그녀는 스물 셋이었다...  

Grace를 그렇게 보내고나서 H와 H의 남편은 타주로 떠났다... 그래도 기일이 되면 한 번 씩 딸 보러 와요... A의 말이 긴 한숨처럼 들렸다...  


Grace가 잠들어있는 공동묘지는 세상과는 달리 아주 평온하다... 바로 이틀 전이 그녀의 생일이었다...누가 보냈는지 몇 묶음의 생화가 만발했다. A가 H에게 보낸다고 사진을 찍는 동안 옆에서 기도를 했다. Grace, please watch over your parents. They need you. Please let them know you are still with them, okay?  

묘지를 떠나면서 A가 혼자말처럼 말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며 지내기에도 너무 짧아요..."   

                       

지난 봄에 아이를 다른 중학교로 전학시켜야만 했던 일이 있었다...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우리 아이가 하필 어느 흑인 아이와 티걱태걱 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흑인 아이들은 꼭 대여섯 명이 같이 뭉쳐 다닌다. 이 아이들이 우리 아이와 한 판 붙자며 교실 앞에서 우리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다행히도 마침 지나가던 선생님이 알아채고 말렸다고 해서 놀란 가슴을 한참 쓸어내렸는데 그런 일이 있고 얼마되지 않아 온 학교에 소문이 퍼졌다... "Someone will bring a gun and shoot him." 학교에서는 그냥 근거 없는 뜬소문이라며 아무 일도 아니라고 일축했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총기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이 나라에서, 혈기왕성한 사춘기 흑인 남자아이들이 언제 무슨 사고를 칠런지 알 수가 없고, 만에 하나 험한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아니, 보낼 수 없었다...  경찰서에 보고를 하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요구하는 우리에게 '피해자가 전학 가는 사례는 없다'며 이 주일이 넘도록 전학 요구를 불허하던 교장이 결국에는 우리 요구를 관철시켜 주었고 다른 학교에는 자리가 없다면서 교육청에서 전학을 시켜준 학교가, 교육열이 높은 중국계와 인도계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집 값이 비싼 동네에 있는, 그래서 이 도시에서 가장 좋다는 중학교였다.  선생님들도 더 열심히 성의 있게 가르치고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더 공부에 열심인 그런 분위기를 가진 학교였다. 


너무 공부공부하는 학교에 다니게 되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처음엔 새 학교에 잘 적응하는 듯 보이던 아이가 수업 시간에 통 집중을 못한다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면 좋겠다고 담임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검사 결과 예상대로 주의력 결핍이 심하다고 해서 처방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던지... 


정말 버거웠던 지난 한 해였지만 정말 힘들었던 한 해였지만 그래도 아이한테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 안에서 이렇게 잘 커 줘서 고마워. 우리 아들.  

앞으로도 이렇게 잘 커주면 정말 고맙겠다...

나는 너가 우리 아들이어서 정말 고마워. (I am so thankful you are my son.)

너는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이란다. (You are the most precious gift from God.) 

다시 태어나도 너가 우리 아들이기를...

이렇게 옆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해. 우리 아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오늘도 열심히 아이들을 사랑해 주세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기에도 너무 짧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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