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철미의 이야기 /아버지, 최세훈

사랑하는 마리아 고모에게

최철미 2013. 12. 30. 18:56





고모, 나야, 철미.  세훈이 딸, 철미야.  일 년만 더 사시다 가지. 내년에 우리 남편이랑 우리 아들이랑 다 데리고 고모 보러 한국 나가려고 했는데...... 창원이도 즈이 각시 데리고서 고모 보러 한국 간다고 했는데...... 일 년만 더 사시다 가지...... 


아빠, 아빤 정말 좋겠다.  이제 옛날처럼 마리아 누님하고 같이 살게 되어서.  이제 마리아 누님이, 아빠 좋아하는 고슬고슬한 찰밥이랑, 귤이랑 사과랑 무랑 납작하게 썰어놓고 콩나물 살짝 데쳐서, 찹쌀풀 넣고 시원하게 익힌, 감칠맛 나는 새콤한 나박김치랑 담가서, 매일마다 삼시 세끼 밥도 차려줄테니 얼마나 좋아.  고추가루 안 넣고도 시원하게 끓인 콩나물 국밥도 해 줄 거구.  아빠가 좋아하는 쫄깃쫄깃한 인절미랑, 흑설탕을 켜로 넣고 밤이랑 대추를 썰어 넣어 만든 쫀득쫀득한 쇠머리 떡도 해 줄테니까 말이야.


윤경이 너도 신나겠다.  이제 옛날처럼, 고모가 뽀얗게 끓여 주는 곰국 먹고, 뽀얗게 살이 오르겠다.  고모가 사 준 공주 드레스 입고서, 옛날처럼 고모한테 어리광도 피우고 그러렴.  옛날처럼 고모한테 너 갖고 싶은 거 다 사달라고 해.  그럼, 고모가 다 사 주실 거야.    

 

고모, 오늘 아침에 고모가 소천했다는, 언니의 이메일 받고, 나 아침부터 전화하느라 정말 엄청 바빴어, 자원 고모집에 전화했더니, 자원 고모가 직접 받아서, 차마 띠동갑 동생인 마리아 고모가 먼저 세상을 떴다는 말을 못하겠더라구,  내일 모레면 백 세가 되는 양반인데 혹시 충격이라도 받을까봐서...... 그래서, 제가요, 고모, 다음 달에 시간 내서 비행기 타고 가서 뵐게요.  지금 제 대학동창이 고모 옆 동네에 한 달 간 안식년 나와 있대요.  동창 만나러 가는 길에 고모 댁에도 들릴게요 하고 얼른 말하고 끊었어.  그리고 나서, 아영이 언니 휴대폰으로 다시 전화했어.  언니더러 상황 봐서 알아서 소식 전하라구 했어.  하와이 세원 고모랑,  미리암 고모한테는 바로 전화했구.  두 고모 다 하는 말이 , 마리아 언니처럼 아무런 고통 없이 자다가 떠나는 게 소원이라나...... 고모 덕분에, 그동안 연락도 못하고 살았던 임희 언니랑도 통화하구.  임희 언니가 엄청 반가와하면서, 나 보고 싶다고, LA 오면 꼭 연락하래.  형부도 반가와하구..... 


그런데 전화하다 보니까, 어느 새 교회 갈 시간이 되어서, 고모가 나한테 준 보라색 스카프 두르고, 고모가 나한테 물려준 까만색 신발 신고 교회에 걸어서 갔어.  우리 남편이 우리 아들 데리고 일 주일 간 시댁에 가 있거든.  나는 이번 주에 우리 직원들이 다 휴가라서 사무실 지키느라 못 갔어.  우리는 차가 한 대 밖에 없어.  우리 남편이 불안하다고 나 운전 못하게 해.  내가 고모 닮아서 완전 길치거든.  아, 참, 우리 할머니도 방향 감각이 전혀 없으셨다고 했지......  그런데 괜찮아.  고모처럼, 내가 가는 곳은 교회밖엔 없는데, 교회가 걸어서 25분이면 가거든.  다행히, 오늘 여기 날씨 참 좋더라.  하늘은 푸르고, 구름 한 점 없고, 꼭 봄날씨 같았어.....우리 목사님께서 '믿음의 경주' 에 대한 히브리서 말씀을 들려주셨어. 설교를 듣는데, 성령님께서 우리 마리아 고모가 믿음의 경주를 다 잘 마치셨다고 말씀해 주셨어.  그래서 슬픈 중에도 엄청 기뻤어.  자꾸 눈물이 나와서 혼났어.....제가 감기가 좀 걸렸어요 하고 계속 훌쩍거렸어......  교회 끝나고 그냥 집에 오려는데, 교회분들이 밥 먹고 가라고 해서 밥 먹고 왔어.  앞으로는 고모 없어도 밥 잘 챙겨먹을게. 고모...... 


고모, 생각 나?  나 전주여고 다닐 때, 고모는 인후동 집에서 살 때, 내가 가끔 고모 보러 고모네 집에 가면, 고모가 "우리 철미 왔냐?" 하면서, 집에 있는 반찬 모조리 다 꺼내서 밥상 차려 주던 거.  밥 먹고 나면 커피도 커다란 잔에 가득 타 주면서 "아가, 천천히 다 먹고 가라" 하던 거.  한 번은 짜장면 시켜줬는데 내가 반밖에 못 먹으니까 고모가 엄청 서운해하던 거.....  지난 달에 한국 갔을 때도, 한국 떠나던 날, 고모가 그랬잖아,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밥 안 먹고 그냥 가냐 하던 거...... 이럴 줄 알았으면 공항 버스 좀 늦게 타더라도 그 날, 고모네 집에서 밥 한 끼 더 먹고 올 걸......         


오후 늦게, 미국 와서 처음으로, 한국에 사는 훈이 오빠랑 행자 언니한테도 전화했어.  같이 늙어가고 있는 처지에 있는 우리 사촌들 간에 앞으로는 서로 다 연락하고 지내기로 했어.  지금 한국에 나가있는 대웅이 오빠한테도 전화했다.  그런데, 대웅이 오빠, 전화 목소리가 엄청 좋더라구.  그래서 내가, "오빠도 목소리 좋은데, 아빠처럼 아나운서 하지 그랬어?" 했더니, 안 그래도 신방과 시험 봐서 붙었었는데, 돈이 없어서 대학에 못 갔다고 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해방을 불과 2주 앞두고 신사참배 거부로 감옥에서 순교했다는 목사님의 유복자, 대웅이 오빠...... 그렇게 훌륭한 목사님 아드님이, 왜 나보다도 더 부모복이 없었을까......  대웅이 오빠도 명년에는 일흔이래.  하긴, 나도 오십이니까....


고모, 창원이도 고모 한 번 꼭 뵙고 싶었었다고 이메일 왔어.  장훈이 오빠도 고모 생각에 마음이 무겁대. 우리 승원이는 오늘 밤 차로 내려가서 화요일 발인식 가겠다고 이메일 왔어......  고모, 우리 아빠랑, 나, 창원이, 윤경이, 승원이, 다 잘 보살펴 주어서 정말 고마와..... 특히,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고모가 아예 우리 집 와서 살면서, 아버지 병수발 해 준 거,  나, 절대로 잊지 않을게...... 그리고, 우리 윤경이, 아빠랑 전주에서 고모네 집에서 몇 달 동안 같이 살았을 때, 그 때가 우리 윤경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호강하면서 살았던 때라는 것도......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고모 신세를 지지 않은 조카가 없네......  


고모, 난 지금 고모랑 고모부랑 우리 아버지랑 윤경이랑 할머니랑 할아버지, 또 상할아버지랑 상할머니 모두가, 고모가 어릴 때 살던 번드리 집보다, 아주 더 크고 더 좋은 집에, 다같이 살고 있는 거 알아.  고모는 분명히 옛날처럼, 번드리 살 때처럼, 그 큰 집 다니면서 팔 걷어 부치고 청소하고 있을 거야.  흐트러진 물건들, 똑바로 해서 제자리에 놓고 있지?  안 봐도 뻔해.  아주 눈에 선해.   


고모, 이제, 편히 쉬어.  이제 아픈 곳도 없고, 이제 걱정할 일도 없고, 이제 눈물 흘릴 일도 없잖아......  이 땅에 남아 있는 고모네 식구들과 친지들이, 고모처럼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지고, 고모처럼 어린아이같이 순전한 믿음을 가지고, 고모처럼 날마다 성경 말씀을 실천하며 살도록, 계속 지켜봐 줘.  그리고, 우리 상할아버지랑, 상할머니랑,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아버지랑, 고모부랑, 또 윤경이랑, 모두 힘을 합해서, 우리 혜원이 언니가, 혼자라도 외롭지 않도록, 힘들어도 지치지 않도록, 그리고 행여 낙심하지 않도록, 합심해서 기도해 주고,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또 도와줘.  그럴 거지?


12-29-13


어젯밤에 잠도 못 자고 쓴 글.  언니한테 전화를 하려고 몇 번이나 수화기를 들었다가 놓았다가 했다.  하지만, 지금 내 심정이 이런데, 엄마를 잃은, 언니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어서, 내가 도대체 무슨 말로 언니를 위로할 수가 있을까 싶어서, 수화기를 내려놓고, 대신, 하늘 나라로 떠나신 우리 마리아 고모한테 편지를 썼다. 이렇게 해서라도 내 슬픈 마음을 달래야 했다...... 


오늘 새벽에 승원이가, 내일 발인식에 가려고 밤차 타러 가는 길이라고, 이메일이 왔다.

오늘 아침에 창원이가, 언니와 통화를 했는데, 언니가 괜찮은 것 같다고 해서, 조금은 안심이다. 


오늘 아침에 장훈이 오빠가 보내준 이메일이, 많은 위안이 된다......


마음이 여리시고, 잔정이 많으시고.... 여러 조카들을 사랑하셨지...

어제....하루종일 마음이 무겁고, 하루종일 많은 생각이 나는구나...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에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중)



그래, 고모, 우리 언젠간 다시 만날 거니까, 나, 그 때까지 잘 살고 있을게...... 철미, 이제 왔냐? 하고 날 반겨주던 고모......  난, 조카들 중에 철미 니가 젤 이쁘다. 하시던 고모......  이제부터, 고모 없어도, 밥 잘 챙겨 먹고, 기운 차리고, 힘내서 열심히 살아갈게....... 언니, 언니도 꼭 그래야 해......


12-30-13




오늘 밤,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언니한테 이메일이 와 있었다......


궁금하지.. 너무나 아름다운 마무리,, 교회에서도 입관예배때  저렇게 아름다운 죽은모습  처음  봤다고,,  

너도 같이봤으면 정말  걱정 없을거야..

혜리가  너무나 슬퍼해서 할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가만히 한숨 쉬고.

.

지금은 나도 너무 지쳐 기운도 없지만 차츰 이야기하고..

오늘 산소 갔는데... 아버지 옆에 너무나 좋고..

 

이제 우리도  아름답게 살아서 잘 마무리 하는게 고모의 유언... 분발합시다..

 

(혜리는 고모가 너무나 예뻐하시던, 강아지의 이름이다.)


12-3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