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철미의 이야기 /아버지, 최세훈

우리 아버지보다 훨씬 더, 너무나도 자상하셨던 우리 할아버지

최철미 2013. 12. 26. 15:42

나는 우리 할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고모들의 얘기로만, '아, 우리 할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분이셨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난,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자상한 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고모들의 얘기를 듣고 나니까, 우리 할아버지야말로 '자상함의 원조' 셨다.  


일생동안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또 기도하는 일에만 전무하셨던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에 비해서는, 자식들에게는 조금 무심한 편이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는 일본까지 가서 아들 딸들의 망토, 털신, 양말을 손수 사다 입히고 신길만큼 자식들한테 관심이 많으셨다.  자식들이 아프면 밤새 옆에 앉아서 기도해 주시고, 지갑에 색실을 감은 바늘을 넣어서 가지고 다니시다가,  딸들의 치맛단을 꿰메 주시고.  게다가 자식들 목욕까지 다 시켜주셨다고 하니, 자상함에 있어 우리 아버지를 훨씬 능가한다.....


고모들 기억에 의하면, 어릴 적에 번드리집에 성경책과 더불어 한의학에 관한 책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아프면 할아버지한테 찾아와서 약처방을 받아 갔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두 사위들을 의사로 만들지 않으셨나 싶다.  우리 아버지한테도 의대나 약대를 가라고 하셨다는데, 할아버지 말씀대로 우리 아버지가 의대나 약대를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나 우리 동생들은 이 세상에 나올 일이 없었겠지만, 아버지께서는 아마, 건강하게, 또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셨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아버진 의대나 약대는 적성에 안 맞는다.  아버지도 대구 의대에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다고 들었다.   아버진,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내게 말씀하셨다.  넌 꼭 의사가 되어라.  그래서 난, 내가 꼭 의사가 되어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적성과는 거리가 먼 이과 공부까지 했었다.  그래서, 우리 집안의 로망이던 연세대 의대를 가려다가, 그 해 시험을 잘 못 봐서 점수가 안 되서 치대에 원서를 넣었는데도, 결국 떨어졌다.....It wasn't just meant to be...... 하지만, 아버지껜 못내 죄송하다.....  한국에 있을 땐 연세대 신학과를 가겠다던 동생이, 미국에 와서 지금 내과 의사가 되어 있는 걸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내 고삼 때 담임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너희 아버님 원 푸셨겠다......


상할아버지께서는 50대에 풍을 맞으셔서 쓰러지셨다고 하는데,  할아버지와 또 할머니의 극진한 간호 덕에 다시 일어나실 수 있었다고.  밤낮으로 약을 지어서 드리고, 대청에 긴 띠를 메어 놓고, 상할아버님께 걸음마 연습을 시키셨다고 한다.  그래서, 지팡이를 짚고 다시 걸으실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세원 고모는 아직까지도 상할아버지께 드린다고 꽃게살을 발라서 게살 무침을 만드시던 할머니를 기억한다......효자와 효부를 둔 덕분에 상할아버지께서는 60이 넘어서 돌아가셨고, 그래서 (당시에는) 호상이라고, 3일장 대신 5일장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하나님 말씀을 실천한 자선 사업가셨다.  일꾼들에게도 일요일에는 하루 일을 쉬고 교회에 가라고 하셔서, 번드리 100호 가정이 모두 교인이 되었다고.  일꾼들에게는 새경을 다른 집보다 넉넉히 더 얹어서 주셨다고.  집에서 일하던 일꾼이 결혼을 하면, 분가를 시키면서 집도 지어주셨다고. 그리고, 농한기에 노름하던 일꾼들의 신발을 가져다가 재래식 변소에 죄다 버리셨다고.  그 다음 날 잘못했다고 회개하는 일꾼들한테 다음 장날에 가셔서 새 신발을 사주셨다고.  번드리를 지나가는 여객과 행상들을 먹이고 재워서 떠나 보냈다고.  거지들을 위한 밥상이 늘 준비되어 있었다고.   할아버지댁에서 일꾼으로 일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는 번드리......  큰 농장과 임야를 관리하느라, 일꾼들에게 자전거를 태워서 심부름을 시키셨다는 할아버지의 번드리..... 번드리는 김제 평야에 위치한 곡창지대며 옥토다.......  할아버지께서는 목사님께서 안 계신 날엔 강단에서 설교도 하셨다는데, 무슨 내용으로 어떤 설교를 하셨을까 궁금하다.. 


  

이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하신 장로님 할아버지께서, 왜 술담배도 전혀 안 하셨던 할아버지께서, 위암으로 55세에 돌아가셔야 했을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위를 열었다가 아무 것도 못하고 도로 닫았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젊어서 부터 소화불량이 심해서 닭죽을 쒀서 드셨다고 한다.   우리 최씨들은 위가 약하다. 그래서, 우리 고모들이나 우리 형제들은 술도 못 마신다.  위염으로 고생한 적이 있는 나한테 의사는 커피도 줄이라고 한다.  우리 아버지도 항상 위가 아프다고 속이 안 좋다고 하셨다.  그런 분이 그렇게 술을 마셨으니......

  

딸 아들을 차례대로 불러 유언을 남기셨다는 할아버지,  세원이 고모한테는 사촌인 연이 고모랑 잘 지내라는 유언을 남기셨다는데, 우리 아버지한테 남기신 유언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께서 선물로 주신 찬송가 안 쪽에 써 주신 글 - 1981년 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