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에 관한 방송 기사 모음

1960년 8월7일 〈 프로필 〉KA아나운서 중계도 잘하고 팬도 많은 명사회자 -침묵의 미덕 지켜 자기 수련에-

최철미 2014. 5. 4. 11:30

1960년 8월7일 〈 프로필 〉KA아나운서
중계도 잘하고 팬도 많은 명사회자
-침묵의 미덕 지켜 자기 수련에-

지금은 폐지된 프로지만「누구일까요」「라디오껨」의 사회자로서 많은 중고등학교 학생층의 팬을 가지고 있는 최세훈 아나운서.
그가 아나운서를 동경한 것은 초등학교 때 부터였었고 방송계에 데뷔한 것은 대학재학시절로 지금부터 6년 전인 1954년도10월 이리방송국의 아나운서모집에서 15대1이라는 아주 좁은 문을 뚫고 선발되면서 부터이다.

이리방송국에서 약 반년동안 근무하던 중 그의 뛰어난 소질과 아나운서로서의 유망한 실력을 발견한 KA에서는 그를 중앙방송국 아나운서 요원으로서 특채하였다. 그러니까 그가 중앙무대에 진출한 것은 1955년 3월 달로 그의KA생활은 만5년이 넘는다.


작년에는 한때 아나운서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편도선에 염증이 생겨서 방송도 하지 못하고 적지 않은 고생을 하였으나 요새는 완전히 회복되어 주로「노래수첩」이나「버라이어티 극장」같은 프로를 담당하고 있는데 원래 국문과 출신이기도 하지만 문학의 소양이 풍부한 그가 식전중계나 무대(오페라 연극 등)중계 시에 사용하는 풍부한 애드립은 특히 청취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11남매중의 유일한 아들로서 한나라의 황태자 못지않게 귀동자로 자라난 그는 아직도 홍안소년의 귀공자 타입이다. 화려한 직업을 가진 사람치고는 너무나도 조용하고 말이 없는 그는 많은 사람과 어울려 잡담을 하는 것보다 혼자 앉아서 책읽기를 즐겨하는 성품의 소유자다.
학교시절에 스포츠는 탁구정도에 그쳤다고 하는 그의 취미는 독서와 영화감상정도라고 하며 아나운서란 소모직업이라고 때로는 후회도 하거니와 그래도 아나운서를 떠날 수는 없다는 솔직한 고백을 하고 있었다.
침묵의 미덕을 지키고 자기수련에 애를 쓰겠다고 하는 그의 소원은 오직 좀 더 완전한 아나운서가 되고 싶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년 27세로 아직 미혼.

1960년 8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