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에 관한 방송 기사 모음

산업경제신문 - 1958년도

최철미 2014. 5. 4. 11:27

산업경제신문

방송을 시의 경지로
-리드미컬한 소리로 고막을 울려-

「리즈미칼」하고 다분히「아프레」적인 어조로 한창「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던「퀴즈·프로」의 명사회자 최세훈「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약 두 달 전부터 아무런 알림도 없이「마이크」앞에서 홀연히 사라져「팬」들의 의아와 걱정을 산바있어 여기에「팬」을 대리하여 최세훈「아나운서」의 근황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라디오·께ㅁ」의「팬」들이 퍽 궁금해 여기는데 어떻게 된 셈이죠?」 장안을 한 눈 아래 바라볼 수 있는 남산의 북쪽 중허리 터에 자리 잡고 있는 HLKA「아나운서」실에서 마침「헤밍·웨이」의「바다와 노인」을 조용히 읽고 있는 최세훈「아나운서」에게 넌지시 말을 던져보았다.
「뭐 별 이유는 없어요. 목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만요. 그렇다고「아나운서」란 직업을 포기할 정도까지는 가지 않지만 아마 명년부터는 다시 여러분 앞에 나타날 수 있겠죠…」그의 목소리는 육성으로 들어봐도 지극히 쾌적하게 우리의 고막을 두들겨준다.
「참 원래는 작가되기를 지망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아나운서」란 직업을 택한 동기는?」
「저도 무척 고민했어요…그러나 드디어 생활인이 되겠다고 결심 하였어요 창백한 형이상학의 노예 되기보다는…」「좋은 책을 보시는 군요.  애독서인가요?  어떤 점에 공명을 느끼시는지요」「제가 뭐라고 단정할 수 있겠어요? 다만「와일드」한 생명력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이렇게름 봐서는 뒤지작 거리죠.  저에겐 없는 넘쳐 흐르는 불굴의 생명력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는「아나운서」되기 전 한참동안 방황하였다.「문학」에만 골몰할 것인가 또는 현실과 정면으로 대결할 것인가…그리하여 그는 드디어「아나운서」란「현실」과「문학」과의「완충지대」에 정착하기로 결심하였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의 이야기이다. 이래 그는「의식 중계방송」등도 맡으면서「방송 알아 맞추기」「라듸오·께ㅁ」등「퀴즈·프로」를 사회하면서 점차 성과를 높이기에 이르렀다.
그의 문학적소양은 그의「아나운서」생활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물론 타고난 재질이 뒷받침되어 있겠지만… 지난 8월15일세종로 네거리에서 베풀어진 건국 십 주년 경축 3군 합동분열식의 중계방송 때- 그는 미리 준비한 대사를 손에 쥐고 있었건만 눈앞에 전개되는 국군의 늠름한 모습에 그만 대사를 따라 방송할 겨를도 잊어버렸다. 번개같이 머리를 스치는 6·25 남침때의 비참한 전화!
그는 저도 모르게 북녘 하늘에 두 주먹을 뒤흔들며 외쳤다.
「이북동포여러분 들립니까 이 군호소리가…」
그가 방송하는 자라나는 대한민국의 생생한 모습은 학대받고 있는 이북동포들의 가슴팍을 마구 뒤흔들었다. 다음날자의 우리 신문들은 모두 그의 방송을 대서특필하면서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문학하려던 그에게도 이순간은 틀림없이「보람」을 느낀 순간이였으리라.  방송을「시」의 경지로까지 이끌어 올려보겠다는 그의 의욕은 그가 다시「마이크」앞에 서는 날 그가 문학좌담회 영화 프로 등을 맡게 될 때「햇빛」을 보게 되리라 당년 스물다섯 살 난 총각 최세훈「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하루속히 회복될 것을 비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