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4.2.27

최철미 2014. 6. 15. 12:00

(2.27)
곰곰이 그의 생각을 해본다. 왜 그는 나의 마음을 꽉 차지하고 있는 걸까. 어제의 난, 물음에 모른다는 대답만 하고…. 어휴, 내가 지금 20살이더라도 그와 멋진 사랑을 할 텐데. 겨우 열다섯. 누이동생 취급당하고. 그는 날 가지고 논 거야. 날 이용했어. 내게 괴로움을 주므로 그는 재미를 본거야. 아이, 분해. 오직 분할 따름이다. 역시 남자들은 늑대야. 늑대밖에 지나질 않는다고. 찬기야. 넌 그러지 말아다오. 여자를 괴롭히는 남자가 되지 말라고. 하긴, 넌 그의 동생이니깐. 네가 형을 닮았다면 치사하고, 잘난 체하고, 뻔뻔스럽고, 더러운 인간이겠지.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찬기 넌 안 그렇겠지? 그렇다면 안심이지만 만약 그런 남자라면 너도 날 차버릴게 아니겠어? 너도 중학교 2학년이 되는구나. 우린 너무 어린 걸까? 왜 너의 형은 날 동생으로밖에 생각 안하는 걸까? 넌 알겠니? 너도 모르니? 우린 빨리 커야겠구나. 너의 형이 폭삭 늙어버릴 때까지. 히히. 볼만 할 거야. 언제나 젊어지고 싶다는 너의 형도 별 수 있겠니. 아이고 찬기야 내가 이토록 약해질 수가 있다니. 다 너의 형 때문이야. 아니? 모른다고? 이 바부. 찬기야. 널 만나러 가고 싶은데 뜻대로 안되는구나. 하지만 미국 가기 전에 꼭 찾아가마. 그때까지 기다려. 우린 말할 수 있잖아. 비록 네가 죽었다 할지라도 말이야. 안녕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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