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편지

1982년 11월 27일

최철미 2014. 6. 26. 13:16

대학 입시를 앞둔 언니에게

언니가 8월 2일 쯤 입시가 꼭 넉 달 남았다고 말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일 모레로 다가왔어. 처음에는 엿을 먹으면 시험을 잘 본다고 해서 엿을 듬뿍 사 주려고 했는데, 오빠가 힌트를 줘서 결국에는 편지를 쓰게 됬어. 편지가 너무 이른 것 같지만 나도 언니 대학 입시 날 쯤 도학력 평가를 보기 때문에 이 편지를 쓰고 빨리 공부해야 해. 하지만 난 오빠나 언니처럼 공부도 못하고 머리도 나빠서 공부해 봤자 별 볼 일 없을거야. 그렇지만 언니는 머리도 좋고 하니까 이번 대학 입시에는 꼭 붙을거야. 난 대학 안 가도 돼. 나는 나대로 식구들 모르는 큰 꿈 (?) 이 있어. 하지만 언니는 꼭 붙어서 아빠, 엄마를 기쁘게 해 드려야 해.
난 세상에서 언니가 제일 좋더라. (아빠는 빼고) 그동안 나 때문에 화 많이 났지? 난 나쁜 애야. 그렇지만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요즘은 착한 애가 되려고 애쓰고 있어. 천국에 가려고 말야.
언니, 시험 잘 봐. 시험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해도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빠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상상해봐. 근 1년간 노력했으니 꼭 붙을거야. 확신을 가져. (너무 명령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아유, 벌써 잠이 오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자자. 언니, 언니도 잘 자. 요즘은 통 얼굴을 볼 수 없으니 편지로 인사하는 거야. 아 참. 오빠는 날 웃기느라고 자작곡한 노래를 들려줬는데, 그 내용인 즉 '누나 - 누나, 우린 누나를 사랑해요. 누나 - 누나, 시험 잘 봐요. 만점 맞아요. 누나 - 누나.' 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오빠도 언니 시험 잘 보길 기도하고 있어. 언니, 나도 하나님께 기도할게. 안녕.

여동생 윤경 (오빠도 대신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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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이의 큰 꿈은 무엇이었을까......




                                              (1983년 2월, 우리 윤경이의 국민학교 졸업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