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수필 모음

방송 낙수

최철미 2014. 2. 8. 12:33

방송 낙수


마이크는 맥주병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품처럼 흘러 남는 것은 없다. 비유하자면 여과기와 같다고나 할까. 우리들의 의욕의 정열이 그리고 영혼까지가 거기에 여과되고 그것은 곧 대기 중에 방사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전되는 게 있다. 그것은 실루엣과 같은 아니 실루엣보다는 아쉽게 손에 잡히는, 어쩌면 물고기의 잔뼈 같은 것이다.

바로 우리들의 생활이다. 우리들은 아름다운 것을 풍요한 것을 매개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오직 매체일 뿐이라는 의식이 이따금 자기분열을 일으킨다. 이 분열을 메우기 위해서 나는 <액체의 빵>을 씹었다.

그것은 나의 인생의 토양을 비옥하게 했고, 거기 철학의 나무가 자랐다. <흘러 남은 이야기>란 안면신경을 자극할 삽화나 이른바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참 많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방송야사 편집자에게나 미루고 싶다. 왜냐면 나는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 이야기들을 거부하고 싶기 때문이다.

분초를 다투는 절박한 순간에 어떻게 곡예사와 같이 위기를 모면했는가 하는 스릴과 서스펜스에 관한 것이며 어쩔 수 없는 페이소스에 관한 것이므로... 그러나 마음 흐뭇한 많은 이야기가 창조되어 왔고 창조되어간 것이다.

이른바 공훈담 같은 것인데 맨숭맨숭한 정신으로 어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인가. 맥주라도 몇 병 비우면서 시작해야지, 이야기는 거품 속에 녹아, 흘러 남을 것이다.

동아일보, KA 아나운서 시절





(아버지 말씀처럼, 마음 흐뭇한 많은 이야기가 창조되어 왔고 창조되어간 것이다...... 앞으로도 더욱 

마음 흐뭇한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또 남기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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