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수필 모음

출발은 귀착이다

최철미 2014. 2. 8. 12:25

출발은 귀착이다
<적당히 엮지>는 못하는 것...


실내악에서는 지휘자가 없다. 통일과 균정을 위한 고도의 협동정신이 콘덕터가 되어 조화미를 창조한다. 본격적인 프로듀서제가 확립되지 않은 현재의 기구에서 아나운서 엔지니어 프로듀서는 하나의 실내단악처럼 방송이라는 아름다운 협화음을 창조하는 최소 단위의 조직인 것이다.

행정학에서는 조직을 공동의 목적을 통일적으로 달성하기위해 협동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 조직에서 협동이란 톱니바퀴와 같다. 하나는 톱니바퀴는 의미가 없다. 다만 원주상에 일정한 톱니형을 새긴 바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톱니바퀴가 서로 물려 동력을 전환할 때 비로소 하나의 의미는 창조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나운서 엔지니어 프로듀서 세 개의 치차운동이 원활할 때 우리 조직의 공동목적은 통일적으로 달성될 것이다. 기구의 합주 전에는 반드시 표준음인 다조의 A에 소리를 맞춘다.

이제 보다 나은 내일의 방송이라는 표준음에 맞추어 튜닝을 해 보자. 우선 국민의 공기라는 숭고한 사명감 속에서 굳건한 연대의식을 갖고 상호간의 직무를 존중하며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호양의 미덕을 발휘하는 참된 인간관계의 수립이 아나운서 엔지니어 프로듀서가 삼위일체가 되는 대전제가 될 것이다. 만족할 만한 상태는 아니지만 오늘 그 대전제는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분담된 업무에 관한 상호간의 기능파악이 원만하지 못한데서 오는 불협화음이 때때로 일어날 뿐이다. 취업량의 기준화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지금 녹음기간의 엄수, 시계의 정확같은 것은 피상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로그램 하나하나의 제작과정에 있어서 가능한 최선의 노력이 경주되지 않는다면 적당주의를 탈피하지 못할 것이다.

외국의 한 오픈 쇼의 경우 녹음 1개월 전의 스크립트는 물론 출연자에 관한 데이터가 편집되어 프로듀서와 아나운서가 완전한 연출 플랜을 세운다는 사실을 어찌 강 건너 미인으로만 여기고 말 것인가

한 달이 너무 장구한 세월이라면 적어도 하루 불가능하면 한 시간 전에라도 좋다. 프로그램의 제작의도, 전달방법, 표현기술에 대한 충분한 사전협의 조도한 연출 플랜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주간방송 1962년 6월 17일)


(아버지의 말씀은 비단 방송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무슨 일이든지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최선의 노력으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자......) 


'아나운서, 최세훈 > 아버지의 수필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송 낙수  (0) 2014.02.08
내 입김의 성숙을 위해  (0) 2014.02.08
해변의 꿈  (0) 2014.02.08
MC를 위한 현학적 노트   (0) 2014.02.08
바람보다 햇빛  (0) 2014.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