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에 관한 방송 기사 모음

국제신보 2월 12일 선배와 후배 - 장기범 아나운서와 함께

최철미 2014. 5. 4. 11:52

국제신보 2월 12일
선배와 후배
경쟁보다 육성을
『텔레비 시대』무엇으로 막나
졸업식의 답사 맡아 본 게 동기

송·답사 맡습니다.

최=늘 함께 있는데도 막상 이렇게 선·후배라는「타이틀」을 앞에 하고 뵙게 되니 감개가 새롭군요.
장=글쎄, 정말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그런데 우리 무슨 얘기부터하지.
최=내력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볼까요.
장=그럴까.
최=그럼 먼저 과장님의「데뷔」동기부터 좀─.
장=동기래야 별게 있나. 국민학교 때부터 졸업식의 송사나 답사를 도맡아 하다시피 했고, 그담엔 중학교 때에「아나운서」의 목소리에 매혹 되었던 것이 입지의 동기라면 동기지.
최=햇수로 치자면─.
장=우리 정부수립직후였으니까 약 17년 전 일이군.
최=그 당시의「아나」들의 지위조건 같은 것은─
장=그때만 해도「채널」이래야 KBS하나뿐이었으니까 제법 어엿한 자세이긴 했지만 별수 있겠어「아나」의 생활이란 언제나「안빈」이란「렛텔」이 전매특허 아니야. (웃음)

선배훈도 받습니다.

최=그땐 우리정부가 수립되고 독립을 했다는 감동도 컸겠지요.
장=그야 물론이지. 그런 감동의 언어가 전파를 타고 보니 지나치게 긴장한 것이기도 했었지. 아니 이거, 읽고 보니 내 개인 문제만 되풀이 되는 것 같은데 이번에 최 군의 입지동기를 좀─.
최=저야 뭐 있어야죠. 처음엔 작가수업을 해볼까 했었지만 어쩐지 창백한「인텔리」의 단면이 능동적인게 못될 것 같아서 건실한 생활인이 되겠다 하구서─ 햇수론 과장님보다 7년 후배에요. 헌데 전 때론 현재의 직업에 대해 무한히 큰 보람을 느껴요.
장=어떤 경우지.
최=다른 부문에서들 따지는 그런 흔해빠진 선후배의 관념에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순수한 자율적인 입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고 길러주는 인간미 있는 선배의 훈도가 있거든요.
장=훈도랄거야 뭐─.
최=그런게 아닙니다. 아무런 과장이 없이 후배들의 기분을 여유 있게 감싸주는─.
장=이 사람아, 그만 두게. 누가 들으면 흔히 말하는 과잉 뭣인가 하는─. (웃음)
최=아닙니다. 자랑할건 해야지요.
장=그런게 자랑이 되나. 해야 할 일을 할뿐인데.
최=그런 말씀을 듣고 보니 절실해오는 문제가 있는데 KBS의 체제 같은걸 개편해야할 때가 오지 안했을까요.
장=이를테면 일본의 NHK같은 반관반민의 체제로 말이지.
최=그렇지요.
장=그거야 일조일석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니까 좀 더 시일을 두고 전문가들이 연구해야할 과제겠지만 이렇게 자꾸만 민방이 생기고하니 때가되면 정돈의 시기가 오겠지.
최=그리고 지금 우리나라는「라디오」시대라고 하겠지만 불원「텔레비」시대가 온다고 봐야하지 않아요.
장=언젠가는 그런 물결이 오고 말겠지. 그 필연적인 사조를 무엇으로 막겠나.
최=그러고 보니 모두들「아나운서」라고 하면 말로만 되는 직업이라고 해서 너무들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장=방송국들이 많이 생기고「아나」들이 다량 생산 되고 보니─.
최=너무 지나치게 직업화 했다는 말씀이겠지요.
장=말하자면 그런 결론이 되는데 우린 6·25때 피난 가서「스튜디오」가 바로 침실 겸, 식당 겸 방송실이 되군하는 기막히는 구속을 당했었지만 그런대로 동경의 대상이 됐거던. 지금은 그런 영향력이 완전히 감소되고 말았어.

거칠어진 언어

최=언어자체도 거칠어졌어요. 모두가 일률적으로「사껀」「조껀」으로 하잖아요.
장=정말 큰일이야.
최=방송국자체에서 책임져야할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의 민도나 기업주의 영향력 같은 것도 가산해야 되겠지요.
장=그야 물론이지. 앞으로 큰일이야, 상방이 자꾸만 생기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퍽 위험해. 경쟁 이전에 육성책이 서야지.
최=얘길 하다 보니 골치 아픈 얘기뿐이군요.
장=아무쪼록 올해는「올림픽」의 해이기도 하니 그야말로 착실히 방송의 사명을 다해야지.
최=그렇게 말씀하시니 사뭇 가슴이 떨리기 시작합니다.
장=떨게 아니라 조용하고 침착하게 우리의 지립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지. 그럼 이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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