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철미의 시모음 /그리움, 그 고백

나도 나비가 되고 싶어

최철미 2013. 12. 4. 09:08

 나도 나비가 되고 싶

      (나방의 노래)

처음엔 나도 나비가 될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눈부신 당신의 모습에 나는 그만 반쯤 눈이 멀어, 대신 나방이 되었습니다. 나비가 당신의 환한 빛을 등에 업고 꽃밭을 날아다니는 동안, 나는 그늘에 숨어서 어서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점점이 밤을 밝혀주는 불빛들이 당신일 것만 같아 반가이 날아들었지만, 역시 당신은 아니었습니다. 언젠간, 타오르는 촛불엔 왼쪽 날개를 데이고 말았습니다. 나비가 날아다니는 한낮동안 나는 또 나비가 되는 꿈을 꾸며 잠을 설칠 것이고, 이 힘겨운 불망의 업을 어서 마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밤마다 불안한 곡예를 계속할 것입니다.



       9-2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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