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氷記
임종을 맞은
아버지의 발은
아직
따뜻하였다.
나는
아버지의 발을 붙들고
아버지, 편히 가세요 했다.
밀랍 인형처럼
관 속에 뉘인
누이의 발은
손이 시리도록
차가왔다.
나는
누이의 발을 감싸며
누이의 죽음이
금세 깨고 말
악몽이기를 빌었다.
내 사랑하는 이들을
땅 속에 묻고
그리고서
나는
결심을 했다.
이제 다시는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자.
그들이 죽어지면
내게 남는 건
뼈저린 상실의 아픔.
내 고통의 바다는
망각의 강보다
훨씬 깊고 넓었다.
눈물샘이 갈라질 정도로
내겐 눈물 한 방울 남지 않았다.
그날
나는
내 무덤을 파고
내 존재의 이유를
죄다 묻어버렸다.
나의 기도와
나의 꿈과
나의 시를.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내 무덤가에 핀
한 송이 풀꽃을
뽑아 버리려다가
차마 그러질 못하고
돌아서는 나의 등 뒤엔
무덤을 열고 나온
나의 분신이
그의 뜨거운 눈물로
꽁꽁 얼어버린
나의 두 발을
녹이고 있었다.
나의 믿음과
나의 소망과
나의 사랑의 잔해로 빚어진
나의 분신은
그의 뜨거운 입김으로
꺼져가는 내 영혼의 불을
되지피고 있었다.
1-1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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