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철미의 시모음 /그리움, 그 고백

해빙기

최철미 2013. 12. 4. 09:20

解氷記


임종을 맞은

아버지의 발은

아직

따뜻하였다.

나는

아버지의 발을 붙들고

아버지, 편히 가세요 했다.

  

밀랍 인형처럼

관 속에 뉘인

누이의 발은

손이 시리도록

차가왔다.

나는

누이의 발을 감싸며

누이의 죽음이

금세 깨고 말

악몽이기를 빌었다.

 

내 사랑하는 이들을

땅 속에 묻고

그리고서

나는

결심을 했다.

이제 다시는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자.

 

그들이 죽어지면

내게 남는 건

뼈저린 상실의 아픔.

 

내 고통의 바다는

망각의 강보다

훨씬 깊고 넓었다.

눈물샘이 갈라질 정도로

내겐 눈물 한 방울 남지 않았다.

 

그날

나는

내 무덤을 파고

내 존재의 이유를

죄다 묻어버렸다.

나의 기도와

나의 꿈과

나의 시를.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내 무덤가에 핀

한 송이 풀꽃을

뽑아 버리려다가

차마 그러질 못하고

돌아서는 나의 등 뒤엔


무덤을 열고 나온

나의 분신이

그의 뜨거운 눈물로

꽁꽁 얼어버린

나의 두 발을

녹이고 있었다.

 

나의 믿음과

나의 소망과

나의 사랑의 잔해로 빚어진

나의 분신은

 

그의 뜨거운 입김으로

꺼져가는 내 영혼의 불을 

         되지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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