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4.2.14

최철미 2014. 6. 15. 12:24

(2.14)
조촐한 장례식도 끝나고, 잔치 집같이 시끄럽던 집안도 조용했다. 몇 안남은 친척들도 내일 삼우제 끝나면 다들 돌아간단다. 너무 허전했다. 아빠라도 살아계신다면, 살아계신다면…. 지금도 귀를 기울이면 아빠의 슬리퍼를 질질 끄는 듯한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빠의 그 나지막한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윤경아” 하고 부를 것만 같다. 아빠의 그 파이프를 입에 물고 미소를 띠우고 계신 모습이 나타날 것만 같다. 그러는 차에 새엄마가 다녀갔다. 동생과 함께 말이다. 훌쩍이는 동생을 보니까 너무 불쌍해 보였다. 예전엔 티격태격했는데 오빠도 몹시 괴로운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여자는 자기의 권리를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었다.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도 인간이라면 세상을 떠난 이의 넋을 위로해주지 않을까 했는데, 온통 실망만 주고 갔다. 양심이 있다면 정말…. 신발이라도 벗어 던지고 싶었다. 아니,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것도 인간인가? 여자인가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살을 맞대고 산 남편이 아니었던가. 더구나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10년 이상 키워 온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욕뿐이었다. 욕밖에 나오질 않았다. 아빠. 도저히 저런 인간들이 아빠 없다고 길길이 뛰어다니는 꼴을 볼 수가 없어요. 아빠라면 “걱정 마 이 새끼야.” 하고 등을 두드려주실 텐데 말이에요. 이제 다시는 아빠를 대할 수가 없어요. 아빤 너무나 멀리 계세요. 아빠. 아빠가 죽은 것도 하느님의 뜻일까요? 그렇다면 하는 수 없죠. 아빤 그 곳에서 지금쯤 편안히 계시겠죠? 그렇게 믿고 싶어요. 너무 고생만 하셨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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