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4.2.15

최철미 2014. 6. 15. 12:22

(2.15)
삼우제날. 소복을 입고 죽산으로 갔다. 장례식 때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론가 가버리고…. 아빠 무덤 옆에는 국화꽃들이 시들은 채 버티고 있었다. 왠지 마음이 울적했다. 산을 내려왔다. 고모들은 제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알래스카 고모도 부안으로 가버렸다. 대전에 돌아올 때는 언니와 나만 돌아왔다. 텅 빈 집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빠의 사진. 그리고 언니 나. 허전했다. 허전함, 그리고 슬픔뿐이었다. 꿈만 같았다. 그것도 악몽이었다. 그러나 현실이다. 결코 현실일 수밖에 없었다. 아빤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믿을 수 없다.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후 내일부턴 학교에 다녀야 한다. 친구들 얼굴을 대하기가 왠지 쑥스럽다. 그렇게 장난을 좋아하고 껄렁껄렁했던 내가, 내가…. 더구나 아이들이 내 흉을 봤다는 소리를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난 어쩌면 좋은가. 친구들 이란 게 위로는 못할망정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난 정말 대인관계가 순탄치 못한가 보다. 정말 슬프다. Y오빤 너의 절대자라니 어쩌느니 하더니 정말 이렇게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전화 한 통이 없구나. 소외된 인간. 아무도 소용이 없어. 진정 도움을 주는 인간은 한 사람도 없어.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해라.” 언제나 이 한마디만 하고는 가버리는 무정한 사람들. 바람도 쐴 겸 신발을 사러 갔다. 아 이젠 누구를 믿고 살아갈 것인가. 아빠 정말 서러워요. 난, 난 어쩌면 좋아요.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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