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어수선한 소리에 잠을 깨보니 6시 10분경이었다. 비몽사몽간에 언니와 오빠의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듯했다. 마침 언니가 울음을 애써 참으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왜들 이렇게 소란스러워?”
“윤경아….”
“빨리 말해봐.”
머뭇거리는 언니가 퍽 이상스러웠다.
“윤경아. 아빠가 오늘 아침에 좋은 데로 갔어.”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아빠, 아빠. 어떻게 된 거에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아빠. 왜 대답이 없으세요. 모든 일이 연극같이 느껴졌다. 모두 날 속이고 있는 거라고만 생각되었다. 나 시집보내고 죽는다고 하시더니…. 실감이 나질 않았다. 믿어지질 않았다. 하얀 이불보가 아빨 덮고 있었다. 몰래 살며시 들춰보았다. 아빠가 눈을 감고 계셨다. 그저 주무시고 계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날 생각이 없으셨다. 마치 굳어버린 양 꼼짝도 않으셨다. 손도 몹시 차가웠다. 아빠의 그 하얗고 가느다란 손이. 그 손이 내 어깨에 와 닿을 때면 아빠의 따스한 온기가 내 셔츠를 통해 느껴졌었다. 그런데 이젠…이젠.
너무도 갑자기 닥쳐왔다. 죽음이란게 이토록 쉽사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 아 하느님. 너무 잔인하세요. 아빠께 효도도 못해드렸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했을 텐데. 오직 후회의 한숨 뿐 이다. 고모들은 차라리 더 잘된 일이라고 하신다. 그래. 생전에 고생만 죽도록 하시다가 이제 하느님 계신 데로 가셨어. 가시가 전에 고통만 안 당하셨다면. 후…. 이제 아빠 이름 앞에도 故가 붙게 되었다. 유서 한 장 안 남겨 놓으셨다. 그만큼 아빠가 끝까지 살리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몰려왔다. 오빠는 상주 노릇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온 집안은 조객들과 향냄새로 가득 찼다. 나와 언니는 손님들을 일일이 접대하느라 슬퍼할 겨를도 없이 무척 바빴다. 친척들도 다 몰려왔다. 이젠 검정 리본이 매어진 아빠의 사진이 날 슬프게 했다. 언제나 미소를 짓고 계셨던 아빠. 이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요. 오빠의 보호 없이 어떻게 살아가요. 아빠. 대답 좀 하세요. 철없는 우리 남매 남겨두고 어떻게 그리도 빨리 가셨어요. 전 겨우 14살이에요. 아빠, 아빠. 눈물만이 넘쳐흐른다. 이따금 술 퍼마시다 눈물짓는 조객들. 모두 위선같이 보였다. 슬픔이라곤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어쩜 그럴 수가 있을까. 방송국에서 촬영을 하러 왔다. 그 까짓것 무슨 소용이야. 이 세상에서 단 한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돌아가셨는데…. 아빠가 지금이라도 나한테 무어라고 호통을 칠 것만 같다. 잔소리라도 좋으니 아빠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들어봤으면. 미칠 것 같다. 아빠, 아빠 곁으로 가고 싶어요. 우리도 다 데려가세요. 네? 아빠. 엄만 손이 다쳐서 몇 달 뒤에나 오신단다. 엄마가 미웠다. 아빠가 돌아가시지만 않았다면. 아빠. 왜 오빠가 검정 옷을 입어야 해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