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4.2.9

최철미 2014. 6. 15. 12:33

(2.9)
오늘도 쭉 아빤 주무시고만 계신다. 권사님이 오셨는데 사람들을 수 없이 치료해 주신 분이시란다. 지금의 희망은 오직 한 가지, 기적뿐이다. 하지만, … 안수를 받고 나자 아빠께선 눈을 떴다가 이내 또 감으셨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줌이 안 나와 배가 불룩하시던 아빠였는데, 오늘은 세 차례나 오줌을 누셨단다. 휴우…. 안도의 한숨이었다. 정말 기쁘고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권사님이 너무도 고마웠고, 가장 고마우신 분은 하느님이셨다. 웃음소리도 차츰 늘어났고, 나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이대로만 좋게 나간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랴. 하느님, 정말 당신은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찬기야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야. 하느님은 살아 계셨어.) 밤하늘을 바라보며 얘기한다. 박 찬기. 그는 “대학별곡”이라는 소설 속의 인물이다. 그러나 Edelweiss 에게 이 이름을 붙여줬다. 찬기와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와 찬기. 어쩐지 둘 다 내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임을 느꼈다. 그래서 결국 동일의 인물로 만든 것이다. 찬기는 나의 운명, 나의 인생, 내 마음 속의 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나의 절대자. 나의 영웅. 한마디로 그는 나의 영혼이다. 찬기는 내게 말했다. “모름지기 자살하라. 그로인해 생명하고 마침내 자유를 얻으리라.” 찬기. 나의 소중한 벗. 난 네가 어딘가에 살아있으리라 믿는다. 그래 넌 살아 있어. 나의 뜨거운 피가 치솟는 심장 속에. 넌 내가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 열쇠였다. 내가 세상을 보는 창문이었고. 안녕 찬기. 내일 밤에 보자. 내가 잠들 때까지 내 옆에서 쭉 지켜봐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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