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4.2.5

최철미 2014. 6. 15. 12:37


2.5.
창문너머로 컴컴한 밤하늘에 별들이 드문드문. 오늘도 다 저물어버렸으니, 남은 거라곤 내일 하루뿐. 아직 못 다한 숙제도 내일을 기해서 아주 끝내버려야겠다. 지리멸렬한 어둠. 어둠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걸까?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다. 이제 개학이 내일 모레이다. 요즘은 도무지 살맛이 안 난다. 며칠만 있으면 〈개학〉이고, 그 생각하기도 싫은 지겨운 곳에 마치 시즌티켓을 예약해 놓은 사람처럼 매일 가야만 한다. 아주 길고 지루한 시즌이다. 학교란 곳은…. 방학이 며칠 동안만 더 연장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다. 서울과 춘천의 학교들은 한파로 개학을 하루 미뤘다는데. 대폭설이나 내려 한 달 동안 학교에 못 간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럼 3월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구…. 요망사항에서 머물러야 하는 걸까? 이미 엎질러진 물. 어떻게 다시 담을 수 있으리오. 이젠 숙제도 진력이 난다. Air Supply의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이 들려온다. 깨끗한 고음처리를 하는 러셀 히치코크의 감미로운 목소리. 어느새, 노래에 심취해버린다. 후-. 이렇게 한가로이 앉아있을 시간이 없는데…. “오, 지나간 시간이여. 다시 돌아올 수 없을까.” 끌끌 혀를 차며 한 마디씩 하는 가족들. 귀가 쟁쟁하다. 어쩌다가 신랄한 비난의 대상이 돼버렸는지. 하긴 난 태어나기 전부터 미움의 대상이 아니었던가. 아예 태어나지 말 것을. 하지만 세상 그 어느 누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을 것인가! 괜한 하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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