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4.1.24

최철미 2014. 6. 15. 12:50

(1.24)

언니와 아빠가 서울에 집을 보러갔다. 이제 곧 있으면 대전을 떠나 서울로 가게 된다. 서울→전주→대전, 그리고 다시 서울. 후-.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 하긴, 곳곳에 친구들이 있으니 좋은 것 같다. 서울에 가면…. 촌놈이라고 괄시를 받겠지? 그럴수록 더 신중히 행동해야겠다. 성격은 어떻게 고칠까? 되도록 말수를 줄여야겠다.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로, 사색하기를 즐기는 그런 아이. 혼자 책읽기를 즐기고 반항아적인 말투. “나는 외롭지 않다. 내 마음속의 세계와 이야기할 수 있으므로.”- 휘트먼. 라는 명분아래 행동한다. 언제나 히스테릭한 잠꼬대를 하는 아이. 후후후. 그럼 어떻게 될까? 늘 어두운 그림자가 떠나는 날이 없고 무슨 일이든 혼자 하는 아이. 낄낄. 재미있겠군. 그건 그렇고 서울로 가면 무엇보다도 공부를 잘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한강. 내 절대자의 영혼이 깃든 곳. 지금 살아있다면 나와 같은 나이일 소년이다. 바로 Y의 동생. 그 애는 한강에 몸을 던졌다. 나의 같은 운명 때문에…. 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소년을 절대자로 생각한다. 그 소년이 바로 내 마음속의 세계이다. 그 소년의 이름은 Edelweiss. 그 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 왜냐구?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꽃이니까. 그 소년도 얼굴을 모른다. 그 소년에겐 미안한 일이다. 내 마음대로 이름을 정해버렸으니…. 기분나빠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난 워낙 버릇없는 애라서. 한강이 바로 앞에 있으니깐. 외롭지 않도록….
“Edelweiss, 기다려 곧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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