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4.1.23

최철미 2014. 6. 15. 12:51

(1.23)

아침 일찍부터〈파리 대왕〉을 읽고 있었다. 막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상대는 아주 급한 목소리로 빨리 나오라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동창인 K였다. 난 몹시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빠가 눈에 불을 켜고 날 감시하고 있는데 하필이때, 마침, 내일 모레가 예비소집일 이었기에 학교에 간다고 빠져왔다. 한참을 헤맨 끝에 K와 S를 만났다. 어유. 바보들 같으니라고. 만나자마자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난 보러 예까지 와준걸 생각하니 몹시도 고마웠다. 번화가를 돌아다니면서 군것질도 하며 재회의 기쁨을 맛보았다. 다리가 몹시 아팠다. 오후가 다 돼서야 고속버스정류장으로 향했는데, S가 선물을 주었다. 손수건이었다. 버스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짙어가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오빠가 다 안다는 듯 한 눈치로 “S하고 K왔다 갔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떡해. 다 털어놓았지. 어유~ 저 악마 같은 오빠. 치가 떨린다. 으~. 밥을 먹으면서 생각해보니 S가 좀 이상하게 보였다. 내가 K와 마주보며 얘길 하면 S가 한참동안 아니꼬운 듯 바라보는 것이었다. 질투가 나서 그럴까? 솔직히, 난 S보다 K가 더 부담이 없어서 좋다. 언제나 장난기 띤 얼굴을 하고, 농담만 지껄이는 K. 하지만 S는 왜 그런지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나보다. 에이, 점점 징그러워진다. 퉤퉤(?). Y→S→K로 이어지는 나의 변덕, 이대로 좋은가. 정말 난 왜 이럴까? 누굴 진정 좋아하는 걸까? 분별 있게 행동하자. 친구와 언니친구로….

'가족들의 글모음 > 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4.1.22 - 그림자 (시)  (0) 2014.06.15
1984.1.22 - 절규 (시)  (0) 2014.06.15
1984.1.24  (0) 2014.06.15
1984.1.25  (0) 2014.06.15
1984.1.26  (0) 2014.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