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3.12.28

최철미 2014. 6. 15. 14:12

12/28

선화와 약속장소에 나갔다. 아무도 눈에 뜨이질 않았다. 10시가 조금 넘어서야 하나 둘 나타났다. 처음엔 왠지 모르게 서먹서먹했다. 서로 합의를 본 다음. 공원으로 향했다.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연못도 꽁꽁 얼어붙어 듬직한(?) 체구의 소유자인 성근이 뛰어내려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 같이 탁구장으로 갔다. 난 선천적으로 운동신경이 둔해서 재미가 없었다. 점심은 자장면으로 때웠다. 무슨 얘길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제법 유쾌한 시간이었다. 버스를 타고 “CORE"라는 백화점으로 갔다. 넷이서 재미있게 돌아다녔다. 땅거미가 질 무렵, 집으로 향했다. 성근을 바래다주기 위해 정류장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난 성근에게 “어떤 타입의 여자가 이상적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게 “너 같은 여자”라고 했다. 나 같은 여자라니…. 그는 쾌활하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예쁘고, 또…. 라고 말했다. 난 얼떨결에 “나도 네가 좋아” 하고 말했다. 후-. 후련하다. 그와 같이 지내온 6년 동안 한 번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그나마 근 1년 동안 잠재의식 속에 파묻혀 있던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으니. 선화는 도무지 이해못한다고 했다. 그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더구나. 참, 그러고 보니…. 대전에는 Y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나의 절대자일 뿐. 절대자≠ 사랑하는 이. 잘 된 일이다. Y는 날 여동생으로만 생각하는데 뭘. 내가 그 이상 뭘 바랄까. 아, 사랑의 기로에 선 여인들. 나도 그들 중의 하나일까. 쳇, 여인이라구? 아직 난 겨우 14살인걸. Y와 S. 둘 중에 누구를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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