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3.12.27

최철미 2014. 6. 15. 14:13

12.27
반창회 날. 여름날보다 더 재미없는 반창회였다. 한나절을 한숨만 푹푹-땅이 꺼져라 쉬어가며 그런대로 보내야만 했다. 남자애들이 밖으로 몰려 나가버리자 그의 생각이 절실히 났다. 언제나 친절하고 아껴주던 그 장난기 띤 웃음이…. 그가 만들어준 사탕 꽃다발을 만지작거리며, 왠지 먹기가 아깝다.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욕망 때문일까? 아니면 4개의 충치 때문일까? 내가 그의 얘기를 선화에게 해 주자, 선화는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과연 그에겐 여자를 끄는 매력이 있는 걸까? 요즘 10대의 소녀들이 좋아하는 타입. 안경 쓰고, 키가 훤칠하고, 삐쩍 마르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간추려 요약하면“핸섬한” 사람. 나도 그러한 조건으로 그를 좋아하게 된 걸까? 아니다. 난 그러한 낭만과 로맨틱한 기분을 떠나서 날 정신적으로 만족하게 해 줄 수 있는 절대적인 사람을 추구하려다가 우연히 그를 알게 된 것 뿐. 구구한 변명일까? 단순한 핑계일까? 아, 나도 내 자신을 판단할 수 없을 만큼 엉망진창의 성격의 소유자인가보다. 선화는 내 옆에서 예쁘게 잠들어 있다. 이따금 개가 울부짖는 소리. 괘종시계의 무시무시한 종소리가 정적을 깬다. 새벽 2시 43분…. 내일은 하루 종일 심심할 것 같아, 종성에게 전화를 했다. 약속시간 10시. 글쎄, 재밌을 것 같다. 더구나 성근도 나온다니까. 내일이 기대된다. 아 집에는 언제쯤 돌아가려나, 영원히 돌아가지 않고픈 심정이다. Why? 라고 묻는다면…. 글쎄, 뭐라고 대답해야좋을지…. 큭. “동창들과의 Meeting”이라고나 할까? 아, 이만 나도 예쁘게 자고 있는 선화 옆에 고요히 잠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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