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글모음/작은 딸, 윤경이의 일기

1983.12.25

최철미 2014. 6. 15. 14:15

12/25

14년째 맞는 크리스마스. 결코 즐겁지가 않았다. 아빠와의 트러블은 잡음과 혐오감만을 남기고…. 언니의 째질 듯 한 그 잔소리. 오빠의 그 불평소리. 또, 나의 한숨소리. 서로 조화를 이뤄가며 하루를 지루하게 넘겨야만 했다. 아 슬픈 크리스마스였다. 낭만과 웃음은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내일은 전주에 내려가기로 했다. 여행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척 반가왔다. 그러나 한편으론 슬픔으로 가득 찼다. 또, 얘기하질 못했다. “헤어지자고” 말하지 못했다. 그는 나의 마음을 다 알고 있노라고 했다. 난 놀랐다. 그러나 표현을 하지 않고, 한 번 알아 맞추어보라고 했다. 그렇지만 우린 결국 요점은 말하지 못했
다. 그 핵심의 주변만 맴돌았을 뿐…. 언니가 위협했다. 여기서 그만 정리하지 않으면 자신이 개입해야겠다고.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 그에게 내 감정을 솔직히 털어 놓을 때까지 이런 프라이버시 침해는 있을 수 없다. 아. 일기장의 첫 장부터 전부 그의 얘기뿐이다. 난 정말 그를 사랑하는 걸까. 아. 도무지 모르겠다. 그 날이 오면 우린 서로 이야기 못한 그 많은 말들을 남긴 채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곳으로 헤어져야만 한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나의 절대자인 그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의 곁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다. 오. 누가 이 마음을 알아주랴! 정녕 님은 떠나가야만 하고…. 아. 오빠. 정말 제 3자의 입장에서 날 다 들여다보실 수 있다면 왜 아직까지 내 주위를 맴돌면서 괴로움을 주십니까. 잊을 건 잊어야 하겠죠. 오빠. 그 유쾌한 패거리들도…. 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이 가슴. 오빠. 사랑의 실과 바늘로 튼튼히 꿰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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