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원고 모음

흘러간 목소리 (라디오 방송 원고) - 1960년에 KBS 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께서 구성하신 프로그램이다.

최철미 2014. 7. 28. 11:20


흘러간 목소리

TAPE SIGN
이 테이프는 2월 16일 저녁 7시 20분에 재생될 것입니다.
S.M --- UP---DOWN
ANN: 방송개시 33주년 기념 특집
<퇴역 아나운서의 파레이드>
<흘러간 목소리> E
S.M---UP--DOWN
ANN: 태초에 말이 있었다. E
그리고 말은 먹고 사는 수단이 됐습니다.
저 아테네의 광장에서 목에 핏대를 올리며 소피스트며 류우트를 손에 들고 전설을 읊었던 음유시인이며 광야에서 외치던 복음의 전도자들.
목적이야 어떻게 다르건 이들은 인류가 갖는 최고의 표현수단인 말을 생업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 후예들의 얘기
S.E........발신음....DOWN
ANN: 줄없는 전화를 만들려는 과학자들의 오랜 꿈이 말코니에 의해 현실돼 음성과 음악이 흘러 나오는 마술상자 RADIO가 발명되자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탄생됐습니다. 그리해서 이 땅에도 소리의 공장이 세워지고 우리말 아나운서가 생긴지 어느덧 33년.
세월의 강물따라 수 없이
E 흘러간 목소리, 흘러간 목소리
그 흘러간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추억하는 퇴역 아나운서의 파레이드를 시작하겠습니다.
M---------UP-----DOWN
ANN: 대기중에 충만한 에텔을 매체로 방산된 그들의 목소리는 이미 소감되고 말았습니다만 여러분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자욱을 남겼습니다. 조수에 씻겨간 물새 발자욱처럼 그것이 아무리 희미한 것일지라도.
M-----UP------DOWN
ANN: 남: 1927년 2월 16일 우리나라 방송의 제일장 제일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됐습니다.
ANN: 여: J O D K
ANN: 남: J O D K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
ANN: J O D K 이 귀에설은 호출부호가 초기에는 마치
S.E.----닭의 울음소리----
ANN: 이 소리와 같았다고 술회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마치 역명을 날리는 고지 아나운서처럼 유장하고 구성지게 들렸다고 추억하고 있는 분이 있으나 우리와는 진정으로 친근하기 어려운 동떨어진 생리를 이 J O D K 는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한국국민의 복지를 위한 공기로서의 KBS는 일제의 구두밭에 짓밟혀 묻혀버린 암흑시대였기 때문에 어쨌던 RADIO 라는 문명의 이기에 경이를 느낀 군상들이 모여들어 유리창 넘어로 박수갈채를 보내고 엔지니어들이 가가호호를 방문해서 방문해서 RADIO를 수리해주는 등의 파격적인 서비스가 베풀어졌던 말하자면 한국방송사에 상고설화시대라고나 해야 할 이 시기와 그 이상에 아나운서의 성좌에서 점멸한 많은 별들이 있읍니다만 더욱 크고 가깝고 빛나고 별들은 1933년 4월 26일 이중방송이 실시돼서 종말에 없던 호화찬란한 프로가 민족의식을 띠고 해외에 전파 돼던 개화기에 이르러서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아나운서의 사표라 불리울수 있는 두분의 일화.
먼저 그날그날의 NEWS를 점으로 동강내지 않고 선으로 연결해서 귀추를 내다보는 영리한 두뇌의 소유자였고 능란하고 부드러운 말솜씨로 당시의 청취자를 매혹시킨 이계원 아나운서
(이하 이계원씨의 NEWS)
<인권의 역사적 선언은 .............증명합니다.>
ANN: 이계원 아나운서와 쌍벽을 이루었던 민재호 아나운서
각본을 써서 동양극장에서 상영한 연극학도이기도 했던 이분의 구수하고 전아한 목소리는 도야된 인간미를 풍겨줍니다.
(이하 민재호씨의 NEWS)
"인권을 옹호하려는 투쟁은 ......... 시작했습니다.“
ANN: 민재호 아나운서는 해방의 벅찬 기쁨을 산천초목도 춤을 추는 듯하다 라고 울부짓어 이 명대사는 감격적인 표현의 고전이 됐습니다.
해방후 민주주의 해설이라는 프로를 통해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형태가 얼마나 행복한 것임을 역설한 이계원, 민재호 아나운서의 전아한 음성을 여러분은 아직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 두분은 지금 미국의 소리에 계십니다.

눈앞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을 그대로 그려야 하는 말의 화가로서의 아나운서는 여러 종목의 중계방송에 진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농구경기 중계방송을 개척한 이현 아나운서!
미국의 캐나디언 웨스턴팀을 맞이한 전 한국군에 야간 경기실황을 처음으로 중계 방송했던 이현 아나운서에게 그 당시의 정황을 여쭤보겠습니다.
ANN: 당시가 그러니까 지금부터 얼마전입니까?
현 : 그게 지금부터 21년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단기 4272년 (서기 1938년) 경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ANN: SP, RM 당시에 중계시간이 얼마나 됐었나요?
현 : 그 때만 하더라도 주간전등이 얼마 들어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낮에는 대개 청취자도 듣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그리고 게임시간이 저녁 때 서울 운동장에 야간 코트를 갖다가 특설해 가지구 했던 관계로 해서 밤 방송이라고 하면 그전에 가장 시간을 애끼던 시간이었는데 그때 30분이라는 긴시간을 갖다가 쪼개서 순전히 그 중계 방송에다가 넣어주셨던 겁니다.
ANN: 이어서 그때의 감상을 ---
현 : 농구자체 경기에 선수 생활을 경험이 있다고 해가지고 그거를 선배들이 대단히 실패할까봐 위험해서 못허게 허시는 걸 갖다가 그야말루 별별 수단을 다 써서 억지루 첫 방송을 갖다가 더군다나 밤방송을 얻게 돼서 그때의 제 감격이라는 것은 그야말루 무슨 장관이나 딴거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ANN: 패망해가는 일본의 최후 발악으로 소위 단파사건에 휩쓸려 들어갔던 이분은 지금 경전 상무로 있습니다.

일제에서 해방에 이르는 그 혼란한 징검다리를 타고 등장했던 두 아나운서의 추억을 우리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윤형노 아나운서---
전인국 아나운서----
아무리 불러도 목메어 불러도 헛되이 메아리 되어 돌아올뿐, 그 이름 앞에 나타날 두 배테란은 지금 자유대한에 없습니다. 저 비극과 참화의 연대, 1950년에 전민족을 카오스로 몰아넣었던 6.25의 도발자 북한괴뢰가 이들을 앗아갔습니다.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아나운서실의 역사는 여백을 남겨 둘 것입니다.

여러분은 조봉순 아나운서를 기억하십니까?
조봉순 아나운서, 6시5분전을 가리키는 시계 바늘처럼 고개를 갸우둥거리실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유명한 분입니다. 조봉순이라는 실명이 아닌 필명으로서... 우선 조봉순 아나운서의 소설 낭독을 들으시면서 이분의 필명을 알아 맞춰보십시오.
(이하 조봉순씨의 소설 낭독)
“초등학교 1학년에서는......아프고 서러웠다”
ANN: 여기까지 들으시고도 아직 알아맞히지 못한 분을 위해서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이분의 자작소설입니다. (이하 조봉순씨 낭독)
“3학년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유모어 작가 조흔파씨. 조흔파 작가가 왕년의 조봉순 아나운서인 것입니다. 천성으로 유모어 기질을 타고난 조봉순 아나운서!
아니 조흔파씨는 때때로 자작소설의 주인공처럼 애교 있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때는 정오가 가까운 시각. 근시 안경 넘어로 표준시계를 쏘아보며 조 아나운서, 막 시보를 알릴 참이었습니다. 당시는 아나운서가 촤임을 쳐서 시보를 냈던 것입니다.
조 : 정각 열두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10초전, 5초전.... 땡 (촤임소리)
S.E. --싸이렌 소리 ---UP DOWN
ANN: 그러나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 1분! 뜨거운 물을 한꺼번에 삼킨 것처럼 당황했으나, 냉정을 돌이켜 침착하게 정정하길를
조 : 열두시---아...실례했습니다. 정각 열두시 1분을 알려드렸습니다.
ANN: 그러나 다시 한번 눈을 부비고 시계를 다시 한번 쳐다 보니 아-- 이런 변이 어디 있겠습니까. 시간은 정각 12시 1분전. 근시안이 유죄였던 것입니다. 심장의 고동은 프로펠러처럼 빨라지고 목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그러나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조 : 아--! 거듭 실례했습니다.정각 12시 1분전을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로 정각 열두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10초전, 5초전......땡 (촤임소리)
ANN: 그날따라 정오 싸이렌이 두 번 울린 것은 물론입니다.
S.E. 싸이렌 소리--------

ANN: 아나운서란 짝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인생독존의 참다운 첫 페지를 열어본 청춘의 시련기였었다고 회고하는 기린아가 있습니다.
음악과 영화 해설에 뛰어났던 이진섭 아나운서--
그의 음악해설을 잠깐
M----UP----B.G.
(이하 이진섭씨의 해설)
“지구의 동남부에서 서반구로 두루 여행을 하고 있는 음악의 세계 일주!
비록 언어와 픙습은 다를지라도 서로 일맥 상통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는 음악을 찾아서, 오늘은 풍치가 좋고 민요의 보고인 ITALY로 찾아 갈 것입니다.
S.M---UP---DOWN
ANN: 이진섭 아나운서!
지금은 시나리오 라이터이며 영화평론갑니다.

조국의 터전이 반석위에 세워진 단기 4281년 8월15일 중앙청에서 열린 역사적인 대한민국 정부수립 정부수립 선포식을 중계했고 같은 날 밤 7시 이를 만방에 공포했던 당시의 우수한 NEWS 캐스터, 이성수 아나운서는 그날의 감격을 되살려.
(이하 이성수 ANN)
"이 시간 NEWS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식이 중앙청에서 성대히 거행되었습니다. 단기 4281년 8월 15일. 이날의 대한민국 정부의 탄생을 중외에 선포하는 민족식전에는 민주주의와 정의의 일원으로서 해방된 3주년을 맞이하는 1948년 8월 15일은 민족의 전도를 무한히 약속하는 듯 서기 충만한 맑은 하늘 아래 이 땅에 민족은 거족적으로 마음껏 영광의 축복을 드렸습니다.
ANN : 이성수 아나운서
지금은 잡지 프리 코리아의 데스크를 맞고 있습니다.

방송의 여명기에 등장해서 많은 FAN을 획득했고 그의 언어의 뉴앙스에 다재다능함을 풍기던 서명석 아나운서
1952년 6월, 헬싱키 올림픽에서의 입장식 광경을 회상하며
(이하 서명석)
대한민국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이역만리 먼곳, 북구라파,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올림픽 경기장이 올시다.
60여 건아가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보무당당하게 입장식을 거행하는 실황을 직접 중계 방송해 드리겠습니다. 이곳 헬싱키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에는 약 30여명 이상의 관중이 운집하고 있으며 보도관계기관 라디오 아나운서, 그리고 기술진등만 약 2000명 이상이 모이고 있습니다. 전란중 우리 대한민국에서 멀리 이곳까지 많은 선수를 보낸데 대해 크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습니다.
ANN: 서명석 아나운서는 코리아 뉴스. 필림 써비스. 지배인으로 있습니다.
M--------UP---------B.G.
ANN: 진.선.미의 전달자로서 조국의 수호자로서 그리고 반공사상 첨병으로서 청춘의 기념비를 이 나라의 방송에 세운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의 공적을 우리들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영광의 연륜위에서 지금 흘러가는 목소리, 그리고 앞으로 흘러갈 목소리는 세월의 강물 멈출 지구의 끝날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결코 종말이 없이.
S.M---UP--- DOWN

ANN: (여) 방송개시 33주년 기념특별 퇴역 아나운서의 파레이드 흘러간 목소리.
구성에 최세훈 아나운서
기술 담당에 김성렬씨
아나운서 강익수 최계환
이상 여러분이었습니다.
S---M------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