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책, 증언대의 앵무새

하나도 아니고 하나 둘 셋 [말의 화가]

최철미 2015. 6. 14. 08:38

□ 하나도 아니고 하나 둘 셋

손기정씨 댁 벽에 장식된 월계관의 엽록이 양피지 빛깔로 바랜 1947년 제51회 보스턴·마라톤에서 서윤복 선수는 마라톤 왕국을 재건했다.
VOA의 이계원 씨는 결승점의 영광을 미국의 소리를 통해 전 국민과 함께 누렸고, 다음해의 54회 캄피티션에서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선수가 1,2,3위로 세계를 제패했던 클라이막스에 그는 너무나 황홀해서 객관을 내던졌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대한 건아가 우승했습니다. 보스턴에 태극기가 하나도 아 니고 하나, 둘, 셋, 한꺼번에 셋이 하늘높이 올랐습니다.』
이 명대사를 아나운서들은 도량형의 기본단위로 인용해서 복수일 때는 언제나 「하나도 아니고 하나, 둘, 셋……」으로 헤아렸다.
40년대가 막을 내리기전 전인국 홍양보 서명석 최승주 양대석 씨 등의 캐스터가 하나도 아니고 「하나 둘 셋 넷 다섯」이나 양산되었다.
운동선수였던 전인국 아나운서는 주관을 배제한 담담한 어조로 게임을 다스렸다.
그의 냉철은 오히려 리스너를 흥분시키는 반사효과를 유발했다.
연구와 노력으로 덤에 오른 홍양보 아나운서는 민재호 씨와는 역수를 썼다.
열광적인 골인의 순간에는 관중의 환성 속에 아나운스 멘트가 묻혀 버리므로 전격적으로『 꼴인! 몇 대 몇』혹은『노 꼴』을 알리고 군중의 노이즈가 F.O 될 때까지 침묵해 버렸다.
역사상 최초의 스포츠·캐스터 앤드류․화이트는 그의 수기에서『아무도 경기의 1타 1타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나는 계속되는 펀치를 한데 묶는 방식을 채택했다.』고 말했는데 30년 후 코리아의 한 권투중계 아나운서는『퍽 퍽 퍽 자알 때립니다. 신나게 때립니다』라고 침을 튀기며 펀치의 의음과 응원으로 실감을 냈다.
기억력을 과신했던 한 아나운서는 중계 한 시간 전에 경기 규칙을 훑어보고 용감하게 마이크로폰과 마주 앉았으나 떠오르는 단어는「후크」와「어퍼컷」뿐 순열과 조합을 배울 때 좋지 않았던 덕분으로『후크』『어퍼컷트』『어퍼컷트』『훅크』를 연결하며 어물어물 한 라운드를 넘겼다.
6월의 전국 학도체육대회를 무기 연기 한다는 25일의 라우드·스피커는 자유와 평화도 무기연기 시켰다.
전쟁과 스포츠는 배반되는 이율인가?
1951년 가을 국민체육의 향상과 전시 하의 사기앙양을 위해 광주에서 열린 32회 전국 체육대회를 KBS는 전 네트워크를 통해 중계했다. 일종의 안간힘.
이 안간힘을 국제적으로 과시한 것이 다음 해의 올림픽 참가였다.
『대한민국의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이역만리 북구라파, 헬싱키의 서울 핀랜드입니다.』
헬싱키의 서울 핀랜드? 도착도 무리가 아니었다. 만능의 서명석 아나운서이지만 1인 10역은 피로했다.
인간 기관차 자토백을 다리에 쥐가 나서 앞지르지 못한 최윤칠 선수의 불운을 들으며 청취자들의 고국, 아니 고국의 청취자들도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참가에 의의가 있다』는 꾸베르땅 남작의 말씀은 실천궁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신봉되었다. 아주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