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책, 증언대의 앵무새

입이 지각을 [말의 화가]

최철미 2015. 6. 14. 08:36

□ 입이 지각을

우리의 찬란한 고유문화가 해외에 전파된 1934년에 들어서 JODK는 5월 31일부터 8일간 최초의 경마 실황중계를 해냈고 7월 1일에는 경성부영 수영장의 개장식에 이어 수상경기 실황도 처음으로 릴레이해서 스포츠 방송의 영역을 넓혔다.
30년대 후반의 스포츠는 축구 붐으로 연보전 경평전의 인기 경기 이외에 도기대항이나 전국 축구 선수권대회가 열릴 때는 하루 예닐곱 시간씩 한 사람이 2,3일간이나 계속하는 초인적 기록도 늘어났다.
한편 직면하는 상황을 즉시 묘사하는 기술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중하듯 시행착오도 적지 아니 나타났다.
「지방 데이」가 마련되어 네트·워크 설치의 길을 닦던 무렵, K씨의 지도하에 축구중계에 처녀 출정한 C 아나운서는 『혼전』이라는 추상명사 하나만을 조자령이 헌 칼 쓰듯 마구 휘두를 뿐이였다.
『앗! 찼습니다. 앗! 안 들어갔습니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찼다는 3W도 밝히지 않은 감탄사귀. 그리고 관중의 함성은 들끓는데 아나운서는 휴식을 취하는지 한참 동안의 길고 신중한 침묵이 흐르다가 경칩 날 입 떨어진 개구리처럼 『혼전!』의 한 마디, 그리고 또『혼전!』눈은 여전히 볼을 추적하는데 입이 지각을 하는 안타까운 부조화를 알치 시키려고 우선 『혼전!』하고 숨을 둘리면 고놈의 바람 넣은 쇠가죽은 이미 시야 밖으로 36계를 해 버리는 것이었다.
북으로 넘어간 소설가 L은 다혈질이었는지 처음부터 『찼읍니다. 찼읍니다.』로 흥분하며 혼자 엑사이트 해지디가 바람빠진 볼처럼 쭈그러지고 말았다.
1935년의 여론조사에서는 야구가 중계방송의 1위에 올랐으나 대부분 일본 사람들의 응답이었고 대륙적인 구기인 풋·볼이 반도의 백성에게는 친화력이 있었다.
1936년 이후 혜성처럼 나타난 두 스포츠·캐스터 때문에 축구는 더욱 더 어필했는지도 모른다.
기관총을 쏘아대는 듯한 어조, 듣는 편의 눈이 되어 전개시켜 나가는 객관의 소유자 이계원 씨, 그의 『슛!』이라는 발음의 강약에 따라 승패의 결정을 알 수 있었으니 음성을 높여 『슛!』하면 반드시 골인되는 권위를 자니고 있었다.
한편 심판으로도 이름 있는 민재호 씨는 절대적인 순간을 고속도 필름으로 분석하듯 골·포스트 앞에서의 경과를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해서 관중을 매료한 다음 호기롭게 『골인!』하는 묘기를 지닌 연극학도였다.
아나운서의 사표인 두 분은 여러 종목의 베테랑이었고 윈터·스포츠와 자전거 경기는 연희전문의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심형섭씨의 특허 물이었다.
중일전쟁의 발발로 JODK는 차츰 어영화했으나 1939년 3월 말 현재 라디오는 13만댕[ 이르렀고 이동무선중계시설 설치인가가 내려 모든 실황중계에 방송차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나 소위 근로보국운동의 보도에만 그 사용이 편중되는 전쟁완성시대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