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책, 증언대의 앵무새

숙녀 신사 여러분 [말의 화가]

최철미 2015. 6. 14. 08:34

□ 숙녀 신사 여러분

해군차관보였던 프랭크린·D·루즈벨트는 세계에서 가장 힘이 드는 실험에 기계를 빌려주고 자금을 조달할 것을 언약했다.
「단추 하나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여러 개의 파장을 가진 자동주 악기」를 꿈꾼 RCA의 젊은이 데이빗·사르노프의 기획에 뉴·딜 창안자의 말씀은 실천력을 불어 넣었다. 스포츠 인구는 많은데 경기장은 좁다는 수요부족에 먼저 착안한 이 아이디어맨은 줄 없는 전화교환으로 경기장에 들어오지 못한 관중들을 매혹시키려했다.
귀를 곤두세운 사람들의 이매지네이션에 작용할 촉매가 되어 실황묘사의 음향을 흘리자는 것이었다.
「무선시대」라는 과학 잡지의 편집장 앤드류·화이트는 해면에 물이 스며들 듯 이 계획에 합류했고 이들 런닝·메이트는 수많은 장애에 부닥쳤다.
허들 경기와 같은 긴 모험의 결승점은 마침내 1921년 7월 2일로 다가왔다.
해군에서 빌린 세계 최대의 무선송화기를 핵으로 3백 여 개의 음향증폭기가 여러 곳의 극장과 공회당에 원형질처럼 번졌다. 송화기가 장치된 레카와나 역으로부터 져지시까지 2.5마일의 전화선이 끌어지고 9망명을 수용하는 목조경기장의 링 밑에서 전화세트는 세계 헤비·웨이트·챔피언 쉽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더운 토요일의 오후 3시 16분. 유럽 선수권자 졸쥬·카팬터가 잭크·템프시에 도전한 이 세기의 대결은 요란한 촤임잉으로 점화됐다.
4각의 정글 밑, 전화기에 매잘린 앤드류·환이트는 억양을 높이며 입을 열었다.
『숙녀 신사 여러분……』
개구일성, 전화통에 쏟아 넣은 말의 분류는 각지에 메아리졌다. 일종의 세포분열.
4라운드에서 종지부를 찍으려는 챔피언은 피스톤과 같은 연타를 퍼부어 마침내 도전자를 길게 눕혔다.
『1,…… 2,……3,…… 4,…… 5,…… 6,…… 7,……』타들어 가는 다이너마이트의 심지, 드디어 카운트는 『에잍,……나인,…… 텐!』 환성은 폭발했고 무수한 악수와 축사가 있었으나 그것은 선수권을 방어한 템프시에 대한 것이 아니고 최초의 스포츠·캐스터와 그 프로두서에 대한 것이었다.
RCA사장은 런던에서 간결한 축전을 보냈다.
『당신들은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현대의 기적을 이룩한 그들 중계방송의 원조는 라디오시대의 화려란 막을 열었다. 그리고 고대 올림픽에 대한 철인 의 정의-『스포츠를 하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이 더 훌륭하다』는 말에 한 마디를 증보할 수 있게 했다.
『듣는 사람은 더욱 더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