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책, 증언대의 앵무새

오발 콩쿨 [말의 화가]

최철미 2015. 6. 14. 08:42

□ 오발 콩쿨

미국의 직업야구단 센투루이스·카디날스가 왔을 때 초청자는 한손으로 FM카에 브레이크를 걸고 또 한 손으로 중계료 지불을 요구했다. 이 위대한 상흔이 끝내 승리한 사건은 참으로 시사적이었다.
돈을 내지 않아도 가능했던 39회 전국 체육대회의 성화 릴레이중계와 마라손의 풀코스 이동중계는 사상 초유의 방송작전 이었다. 이광재, 박종세 아나운서가 첫 전투에 나아갔고 강찬선, 임택근, 황우겸, 전영우 아나운서와 함께 화려했던 온·파레이드.
성화 봉송을 뒤따르며 타오르는 토오취의 연기에 목이 매케해진 캐스터가 이 아나운서를 이선수라고 부른 것은 보조개 같은 애교,
그러나 대역전인가 9,28 수복기념인가의 마라손 결승점에서 영화 필림의 REVERSE 같은 카운트다운을 한 사람도 있었다.
『앤드·라인, 앞으로 10미터 5미터 7미터…꼴인!』
이 산술대로라면 5미터 지점에서 뒷걸음질 치다가 질풍처럼 테이프를 끊은 셈이 되지 않는가?
VAN형 이동중계차「고바우」는 앞좌석의 시계가 훤히 트이지 않아 불편했다.
생명보험에 가입하지도 않은 임택근 아나운서는 서울수복기념 마라손을 황우겸 씨와 함께 중계하면서「고바우」천정 위에 새끼를 두르고 담뇨를 깔고 앉아 시속 16마일로 달렸다.
바람은 싸늘하게 스치고 전차 줄에 걸릴세라 목을 움츠리며 쭈그리고 앉은 그들은 압송되는 죄수들 같았다.
『마이크를 황우겸 아나운서에게 옮기겠습니다.』
쇠붙이를 건네려고 몸을 돌린 순간 갑자기 중심을 잃은 임택근 아나운서의 발 하나가 쑥 미끄러져 나갔다.
『엇!』
황급히 내밀어진 동료의 손이 아니었던들 국보하나가 깨질 뻔 했다.
철각 아베베가 9,28 수복 기념 국제 마라손에 참가해서 다시 초인임을 과시했을 때, 민간방송연합은 인천으로부터의 풀코스를 이동 중계했다.
『이태리의 아베베』라는 국적변경이야 단순한 착각이었지만 여러 종류의 캐스터로 구성된 이 혼성 중계 팀은 2시간여의 마라손을 권태롭지 않게 이끌어갔다.
『아베베 단독 드리블!』
『아베베 페인트·모우션!』
구기와 마라손은 때로 자매결연도 하는가?
이 오발 콩쿨은 점입가경.
『아베베―방향은 전방 눈은 정면 발의 각도는 45도, 시속16마일, 후속그룹의 시속은 15마일입니다.』
이 신안특허의 아나운스·멘트는 몇 번이고 되풀이 되었다.
즉시묘사에 광채를 더 하려면 풍부한 보캐블러리를 가져야 했다. 귀추가 주목된다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애용하던 이광재 아나운서는 어쩌다가 그 페레그라프에 혼란을 일으켰다.
『귀추가 어떻게 주목 될 것인지…』
『귀추가 어떻게 주목 될 것인지…』
진땀나는 꼬리 찾기가 한참동안이나 반복되었다.
언어의 절제, 나아가서 생략 미 같은 것이 스포츠 중계에 바람직하지 않을까?
개성 있는 표현과 어휘의 나열과를 혼동한 아나운서는 제5회 아시아 야구대회의 결정의 시간을 수사에 빼앗겼다.
20대 1의 지나간 치욕을 씻고 일본을 제압한 승리의 그날, 2차 리이그 8회초, 1대 0으로 우리나라가 이기고 있을 때 4번 타자 박현식이 포볼로 걸어 나가고 강타자 김응룡이 뱃터·박스에 들어가기 전, 아나운서는 이 게임에 쏟는 전 국민의 열광을 설명하려 들었다.
『오늘 겨레의 마음은 모두 여기 모이고 운집한 시민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는 이 곳 서울운동장 야구장…계원은 계장에게 볼 일이 있다고 나가고 계장은 과장에게 볼 일이 있다고 나가고 과장은 국장에게 볼 일이 있다고 나가고…』
위계질서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던 아나운스·멘트는 갑자기 환성과 갈채에 묻혀 버렸다.
홈런! 홈런! 투런 호머를 날린 김응룡은 이미 홈인 하고 있었고 아나운서는 볼 일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