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 최세훈 시인의 시모음

분수

최철미 2013. 12. 4. 11:15

噴水

 

한 마리의 龍이 되기 위하여

하늘을 가르며 무섭게 치닫지만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물방울의 떼죽음......

 

모두

제저끔의 높이와

제저끔의 길이가 있는 것을

 

줄기차게 치솟아

맥없이 스러지는

눈 먼 외길 되풀이......

 

때로 햇빛 보듬어 무지개를 피우고

때로 色燈 머금고 꽃보라로 휘청거려도

끝내 하늘로는 오르지 못한다.

 

아무나 龍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도 龍이 되지는 못한다.

 

 

- 노령 1980년 10월호



노령은 전라북도에서 발행된 문예지. 1980년도에 언론 통폐합이 있었고, 광주 민주화 운동 때 광주 문화방송이 불에 탔습니다.  당시 아버님께서는 전주 문화방송 상무로 재직 중이셨는데 광주 민주화 운동 때, 전주 문화방송에 비상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해 가을에 전주에서 61회 전국 체전이 열렸습니다.  당시 전주여고 일학년이던 제 동기들은 부채들고 부채춤 연습한다고, 또 다른 학교 학생들도 메스 게임에 동원되어 수업도 몇 달 씩 빼먹었습니다.  전대통령이 전주에 온다고 연습했던 대통령 찬가의 가사가 기억 납니다.

이런 면에서 '분수' 는 전라도 출신 시인의 소극적 저항시로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전라도 김제 죽산 시골에서 아무런 배경이나 내세울만한 학력도 없이, 오직 본인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서울 방송계에 진출하여 유명 인사가 되었던 아버님께서 이런저런 이유로 전주로 낙향하여 한직에 있게된 자신의 한계에 대한 회한을 나타낸 시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분수'는 아버님께서 이 세상에 남기신 마지막 시입니다.

 

- 훗날, 맑고 밝은 천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찬미의 이중창을 부를 아버지의 딸, 철미의 해설이었습니다.

'아나운서, 최세훈 > 아버지, 최세훈 시인의 시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춘  (0) 2013.12.04
낙과  (0) 2013.12.04
종도  (0) 2013.12.04
수련  (0) 2013.12.04
5월  (0) 2013.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