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철미의 이야기 /철미의 수필

그 아이

최철미 2013. 12. 10. 15:17

 정말 오랫만이었다. 그 아이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이 내 여동생의 장례식에서였으니까, 거의 칠 년만이었다. 그 아이의 집은 우리 집에서 걸어가도 될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그 아이는 미국이라는 낯선 고장에 막 도착해서 헤매던 우리를 무던히도 많이 도와 주었다.   친구처럼 지내던 내 동생의 장례식에서, 그 아이는 내 동생의 관 한 쪽을 들고 가며, 나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흘렸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그 아이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가끔씩 동생 산소에 꽃묶음을 갖다놓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들리는 소문에 그 아이는 다른 주로 가서 산다고 했다. 

 몇 달 전이었나. 우연히 그 아이의 친구를 만나 그 아이의 소식을 들었다.  그 아이가 다시 이곳에 돌아와 산다고 했다.  나는 그 아이의 친구에게 내 명함을 쥐어주며 부탁했다. 꼭 연락하라고 해요......  그 아이가 보고 싶었다.  아니, 동생이 보고 싶었다...... 

 그 아이는 이제 어른이 다 되어 있었다.  그래도 내가 기억하는 어린 소년의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장사를 하다보니 말수만 늘었다며, 농담도 척척 잘 했다.  옛날의 그 아이는 수줍고 말없는 소년이었는데......  식당에 데리고 갔더니, 밤새 과음을 했다며, 해장국을 찾았다.  노파심에, 얘, 너 몸 생각해서 술 마셔, 곧 서른인데 했더니, 누나, 걱정마. 이젠 그만 마시고 곧 장가 갈 꺼야 했다. 나는 속으로만 그래, 그래야지 했다.  그 아이와 점심을 먹으면서 난 줄곧 동생 생각을 했다.  그 아이도 날 보면서 동생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그 아이도 나도 동생 이야기는 서로 사전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아이와 헤어지며 일부러 수선스레 명랑한 표정으로 말했다. 얘, 장가갈 때 꼭 연락해라, 지금부터 돈 모아서 선물 사 갈 테니까, 알았지?  또 소식 전하구.  하지만 그 아이를 보내고 돌아오면서 깨달았다.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하나도 하지 못했음을......  동생한테 참 잘 해 줘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이제 그만 다 잊어버리고 살아, 알았지?  세월이 약이란다.  봐라, 이젠 나도 이렇게 내 동생 얘기를 할 수가 있잖니.  옛날엔 눈물이 앞서서 차마 할 수 없었거든.  먼저 가는 사람은 좋은 기억만을 남기고 간댄다.  그래서 더 그립고 아쉬운 지도 몰라...... 이제, 참한 아가씨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아.  그래야 내 동생도 기뻐할꺼야.  알겠지?......  그날은 하루 종일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S.F. 한국일보 여성의 창 

 

7-2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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