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철미의 이야기 /철미의 수필

감사의 이유

최철미 2014. 1. 29. 17:47

우리 아들아이가 지난 해 추수감사절에 학교에서 만든 Thanksgiving Art Project 의 제목은 '감사의 이유' - 아들아이는 감사의 이유로, 일용할 양식, 선생님, 부모님, 가족들, 친구들, 급우들 (food, teachers, parents, family, friends and classmates) 이라고 써 놓았다.

 
곧 열 살이 되는 아들아이가, 곧 쉰 살이 되는 나보다도, 살아가는데 정말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아서, 한 편으로는 그런 아이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공립 초등학교 4학년 Art Project을 통해 감사의 이유를 깨우쳐 준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도 정말 감사했다. 또한, 미국 교육의 앞날이 여전히 밝은 것 같아서 감사했다.

지난 주 목요일, 아이 학교에 다녀왔다. 교장 선생님, 담임 선생님, 학교 아동 심리학자 이렇게 세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만났다. 얼마 전에 지능 검사를 했는데 평균 이상이 나왔다고, 다음 해부터는 일반 학급으로 배정을 해야겠다고. 남은 학기 동안 일반 학급에서 보내는 시간을 점진적으로 늘려보자고...... 학교를 나오면서 우리 남편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당신, 그 동안 참 수고가 많았어요.’

내 나이 마흔, 우리 남편 나이 마흔 다섯에 기도로 얻은 우리 아들 아이......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자연 유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남편이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서 예민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슬프게 엉엉 울 줄은 몰랐다...... 그런 남편 때문에 슬픈 내색도 못하고 가슴만 아팠던 기억..... 애기는 또 가지면 되니까, 어서 추스리고 일어나라며, 우리 동네 아줌마들이 끓여다 주던 미역국 ......정말 감사하게 몇 달도 되지 않아 다시 아이를 가졌을 때, 기적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임신 기간 내내, 내가 다녔던 한인 교회와 남편이 일하던 미국 교회에서 중보 기도를 해 주셨다.  시집과 친정 식구는 물론이고,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한테도 기도 부탁을 했다....

      
이렇게 귀하게 기도로 얻은 아이에게, 비록 경증이긴 하지만 소아 자폐라는, 너무나 생소하고도 생경한 진단이 내렸을 때, 정말 하늘이 노랗게 보였었다. 남편과 함께 건물을 나오면서 "It can't be true." 했던 기억.... 우리 아이는 말이 느렸다...... 영어를 쓰는 남편과 한국어를 쓰는 나 사이에서, 더구나 남자 애니까 말이 조금 늦나보다 하고 별로 걱정을 안 했었는데, 다니던 병원의 소아과 의사가, 아이가 말이 너무 늦는 것 같으니 검사를 받아 보라고 해서, 교육구청에 신청을 하고 두어 달을 기다려 검사를 받아 본 결과였다.  '설마...... 오진이겠지' 하며 다시 두어 달을 기다려 받은 주정부 산하 기관과 다시 서너 달을 기다려 병원에서 나온 진단도 다 엇비슷했다. 자폐 성향을 동반한 소아 발달 장애...... 이렇게 해서 유아원 (Preschool) 으로부터 시작한 특수 교육은 아이가 4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왔다.   그리고, 진단을 받은 무렵부터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자폐아 치료는 교육청 소관이기 때문에, 진단은 내려도 치료는 해 줄 수 없다는 병원과 보험 회사를 상대로 편지를 쓰고, 보험 회사를 관장하는 주정부 보험국에 항소를 하고, 그 결정을 기다리고......동병상련이라고, 인종과 종교를 막론하고, 자폐아를 가진 주위 어머니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주정부 보험국에서 우리 편을 들어주었다.   학교가 끝나면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언어 치료와 작업 치료, 사회성 치료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고, 행동 치료사는 거의 매일 집으로 와서 우리 아이를 가르쳤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머니들은 강하다.  자폐아 어머니들의 힘으로, 2012년 7월 1일부터 의료 보험 회사가 의무적으로 자폐아의 행동 치료를 해 주어야한다는 California 주 법이 생기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작업 치료는 제작년에, 행동 치료는 작년 11월로 졸업을 하고, 이제는 언어 치료와 사회성 치료만 받고 있다.  언어치료도 일대일로 받던 것을 이제는 그룹으로 받으라고 한다.  아직도 숙어에 대한 이해와 언어 구사력, 문장 표현력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부족하다고 하는 걸 보면,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다.  하지만, 이제 곧 특수반에서 일반 학급으로 옮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선생님들의 말에,  비로소 긴 터널 끝이 보이는 듯 한 그런 느낌이 든다...... 이 자리를 빌어, 내가 보기에도 너무 주위가 산만한 우리 아이를 가르치시느라 애쓰시는 학교 선생님들과 치료사 선생님들께, 또 우리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1-29-14







'딸 철미의 이야기 > 철미의 수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은 애도의 시간  (0) 2014.04.28
자기 소개서  (0) 2014.04.20
가지고 떠날 수 있는 것은   (0) 2013.12.10
벗에게  (0) 2013.12.10
미국 시골 회계사가 말하는 성공의 비결  (0) 2013.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