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를 추억하는 회고담 모음

그토록 좋아하시던 인삼 담배에 불을 붙여… 최원두(마산문화방송)

최철미 2014. 2. 2. 10:13

그토록 좋아하시던 인삼 담배에 불을 붙여…

형.
이제 당신의 낭랑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당신의 눈가에 오래 머무는 그 잔잔한 미소를 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흐르는 미소 한 줄기로 모든 이야기를 다해 버리는 그 깊고 깊은 웃음의 언어를 이제 나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 무슨 청천벽력과 같은 일입니까?
아니, 지금 우리가 여기 모여서, 형의 짧았던 인생을, 선배의 깔끔하였던 성품을, 후배의 다정다감하였던 방송을, 그리고 형의 불운하였던 근년을 이야기하는 이 짓거리들을 우리가 왜 하고 있어야만 합니까?
답답합니다. 아니 억울합니다.
훌륭한 방송인을 한 분 잃는다는 안타까움보다 조용하고 힘차게 살려던 한 인생의 좌절 앞에서 우리는 더 진한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은 무서운 사무가이면서도 일 속에서 사람을 만날 때에는, 어떤 사람이었든지 간에 인간으로 여과시켜 우리 공동의 삶의 뜻을 나누어 갖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형은, 관리나 경영을 맡은 방송인이기 보다는 방송과 인간을 동시에 인간적으로 해석하려드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휴머니스트였습니다.
유독사람 관계 때문에 외롬을 타던 형!
베풀었기 때문에 결실을 기다리던 형!
그러므로 인해서 실의에 젖어들던 형!
이렇게 야속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형의 인생을 끝맺게 한 우리들의 세상을 지금 이 시간에 뭐라고 변명해야 옳겠습니까?
형.
지금도 기억합니다.
대전에서 처음 마산으로 내려오시던 날, 깊은 포옹을 한 채로,
“최 형이 마산에 있어서 내려왔어. 여기는 따뜻할꺼야!”
얼마나 사람 때문에 추위를 느끼셨으면 생면부지의 마산에서 따뜻할 것을 기대하며 이 후배에게 던진 마디의 간곡한 부탁이 “따뜻한 세상”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후배는 형을 한번도 따뜻하게 해 드리지 못한 채 오늘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마산이 외지이기 때문에 외로울 것이라는 물리적 해석만 앞세운 이 못난 후배는 직사하게 정말 직사하게 밤거리를 모시고 다니며 사약 같은 술대접만 연신 해드렸으니─.
형! 진실로 형의 가슴 속 깊숙이 못 박힌 추위를 읽지 못한 이 후배의 우매함을 어떻게 사죄하여야 되겠습니까?
이미 그때에는 술을 잡수셔서 안 될 시기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 후배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술잔에 술을 적시며 복잡하게 일그러진 가정과 원로 방송인의 좌절을 씻어내야 했던 형의 맺힌 한을 이제야 뒤늦게 깨우치는 후배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어제는 “번개”임재우 형이 형의 빈소에서 나오며 눈두덩이 붉었습니다. 매사가 번개처럼 잽싸다고 형과 내가 붙여준 별명의 “번개”임재우 형도, 항상 주말이면 이 대전과 마산을 달랑 보스톤 백 하나만 들고 오르내리던 “나그네” 형의 속마음을 번개처럼 읽지 못한 회한이 가슴을 치는 모양입니다. 입만 벌리면 “구라”라고 “벌구”라는 별명을 붙여주신 이 최 원두도 “번개”의 충혈된 눈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습니다. 무슨 말이든지 한마디 건네야 이 후배의 속마음도 풀릴 성 싶은데, 암만 입을 벌려도 정말 나그네처럼 훌훌히 떠나가 버린 형에 관해서 이제는 아무런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 형을 잃은 슬픔이 임재우 형이나 이 후배의 가슴에서만 부딪겠습니까? 평소에 형이 그렇게 존경하시던 장 기범 선배님도 “어허- 이 사람이 갔어! 이 사람이 갔어” 하시며 연신 빈소를 드나들며 형이 그토록 좋아하시던 인삼 담배에 불을 붙여 향로에 꽂았습니다. 장기범 선배님 돌아가시면 장의위원장 하신다던 약속을 형이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고 어젯밤에도 내내 우셨습니다.
변 현규 사장님도 “사람 일이 이럴 수가 있냐?”하시며 비통해 하셨습니다. 형이 봉직하였던 대전MBC, 전주MBC 임직원들도 슬픔을 같이 나누며 형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습니다. 서울MBC ANN실과 서울KBS ANN 실에서 형이 정성들여 가꾼 후배·동료들도 먼 길을 달려와 부음을 확인하며 짧은 인생을 같이 울었습니다. 평소에 극진히 아끼고 사랑해 주시던 마산MBC의 직원들도 형의 마지막 길을 봉송해드리기 위해, 슬픔을 씹으며 달려와 여기 이렇게 줄지어 서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MBC 전 계열사의 중역들과 본사의 중역들이 이 대전에 모여서 어제 하루는 형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추모하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슬픔 속에서도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철미, 창원이, 윤경이의 철없는 얼굴들이 이 엄청난 슬픔을 감당해 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저 애처러운 모습들입니다.
형!
어떻게 눈을 감으실 수 있었습니까?
“순금 같은 무게”로 “순은처럼 반짝이는”철미가 이제 막 대망의 서울대 학생이 되어 새로운 장을 여는 이 찰나에 어떻게 외면하시고 돌아 설 수 있었습니까? 학교의 담임선생님도 놓기가 아까워 아직까지 전주에 붙들고 있는 창원이의 장래를, 형은 그렇게 무심히 뿌리칠 수 있었습니까? 철미가 바로 오늘부터 순금 같은 서울대학의 순은같이 반짝이는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아시고 계십니까, 형께서는?
형!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가시는지, 총명하고 기억력 좋고 해박한 지식으로 명 사회자의 솜씨로 대답해 주십시오. 이렇게 형을 떠나보내면서 목메어 오열하는, 남아있는 정인들에게 마지막 전별사라도 속 시원히 한 토막 남겨 주십시오!
아, 이러한 일을 두고 인생이 무상하다고 말하는 모양입니다.
형은 그곳에 누워 계시고, 우리들은 이렇게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고 서서, 들을래야 들을 수 없는 시간의 공백, 볼래야 볼 수 없는 공백의 허무, 이것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이것이 인생의 무상인 모양입니다.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로 비유된 성경말씀을 상기하면서 믿기지 않는 이 현실을, 무력한우리들로서는 부정할 힘이 없습니다. 형의 죽음 앞에서 이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무엇을 느끼는가에 대해서도 주체적인 해석을 유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이 엄청난 현실을 평소에 형이 열성을 다하여 일해 온 MBC 전체가 애석해 하며 같이 통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형은 꼭 기억하고 떠나십시오. 형의 죽음 앞에서 MBC의 일체감을 확인하는 아전인수식 우를 용서하십시오. 인기 어나운서, 살아있는 방송 문화의 증인, 한 때 유명 어나운서 제조기로 본사의 어나운서실을 호령하시던 형이었기에, 대전에서의 조그만 끝맺음에 사족을 달아 보았습니다.
형!
이제 편히 떠나십시오.
형이 30여 년 동안 노심초사하며 이룩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이 후배들이 그 뒤를 맡겠습니다. 형의 능력을 따라가기에는 이 후배들의 힘이 미치지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하여 인간의 소리, 사람의 감정을 방송 메커니즘 속에 불어 넣겠습니다.
“말의 시인”이 되라고 후배들에게 당부하시던 그 말씀 명심하시고 말의 영혼을 쫓아, 다시 내일부터 이 슬픔을 딛고 일어서겠습니다.
평소에 하시던 말씀처럼 “하나님이 예비하신 세계”로 편히 떠나십시오.
그리고 편히 쉬십시오.
외롭지 않게 영원히 사십시오.

 

1984년 2월 13일





(그런데, 아버지가 생전에 피우신 담배는 인삼 담배가 아닌 '솔' 이었다......  누군가가 아버지 생전에 선물했던 인삼 담배를 누군가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영정이 있던 향불 옆에 놓아 두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도 담배를 피우셨다...... 술담배를 안하셨더라면, 방송국이 아닌 다른 직장에서 일하셨더라면,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해주는 좋은 아내를 만나셨더라면,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사실 수도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아주 많이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