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를 추억하는 회고담 모음

「증언대의 앵무새」는 떠나가고… 안홍엽 (전주 문화방송 편성부장)

최철미 2014. 2. 2. 10:17

「증언대의 앵무새」는 떠나가고…
방송인 최세훈 씨 영전에…

누가 당신을 모른다고 하겠습니까?
누가 당신이 가셨다고 믿겠습니까?
그러나 당신은 가셨습니다. 아니 당신은 영원히 우리 가슴 가슴마다에 살아계십니다. 20여 년 전 당신이 쓰시고 당신이 읊었던 시가 있었죠. 그 속에는 당신의 젊음 당신의 철학 당신의 인생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젊음은 가슴마다 그토록 애절하게 그토록 달콤하게 그토록 사랑스럽게 메아리 지던 당신의 음성은 지금도 우주 어디에선가 메아리져가고 있을 텐데
당신은 이승을 홀연히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영원한 메아리를 쫓아 떠나셨나이까. 그토록 추웠던 겨울도 가고 당신의 포근한 서재 앞에는 찬란한 봄의 합창이 무리 져있는데 무엇을 찾으려 당신은 홀연히 떠나셨습니까
방송을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방송을 위해서 사는 것처럼 그렇게도 간절하게 심혼을 쏟으시더니 어찌 잊어버리고 총총히 가실 수 있었는지 모르겠나이다. 방송은 아직도 할 일을 산적해 두고 있는데 말입니다.
20년 만에 찾아온 고향이라고 전주 문화방송에 부임해 오셔서 얼마나 감개무량해 하셨습니까? 부임하시던 그날, 세계 속의 전주문화방송으로 도약하자고 힘주어 말씀하시던 그 모습, 지금도 눈에 아련합니다. 영어단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근무수첩을 영어로 쓰시던 당신, 나이가 들면 메모가 최고라며 큰 것 잔 것 가리지 않고 깨알같이 기록을 남기시던 당신, 당신이 가는 날을 당신은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요가며 지압이며 비 의학적인 요법까지도 이론적으로 통달하시며 당신의 건강을 손수관리하시지 않았습니까? 책임지고 허리를 치료해주겠다던 약속은 언제 지키시렵니까?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그토록 무력한 당신이었기에 밥알 하나 물 한 모금에도 그토록 정성스러운 모습이었나이까?
〈한 마리의 용이 되기 위하여/ 하늘을 가르며 무섭게 치닫지만/ 하얗게 부숴져 내리는 물방울의 떼죽음/ 모두/ 제저꿈의 높이와/ 제저꿈의 길이가 있는 것을/ 줄기차게 치솟아/ 맥없이 스러지는/ 눈먼외길 되풀이/ 때로 햇빛보듬어 무지개를 피우고/ 때로 색등 머금고 꽃보라로 휘청거려도/ 끝내 하늘은 오르지 못한다/ 아무나 용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도 용이 되지 못한다〉
「노령」지에 발표한 당신의 시「분수 」는 금의환향을 자축하는 당신의 작품이었는데 그것이 절시로 남을줄이야.
소홀히 보지 못하던 당신의 성품이 당신의 가심과 무슨 상관관계는 없었는지 하늘은 끝내 오르지 못한다고 분수를 보며 읊었던 당신, 그러나 당신은 하늘에 오르시기가 그렇게도 바빴습니까?
서가에 꽂힌「증언대의 앵무새」를 뽑아들고 당신의 생전을 소리없이 울먹였습니다.
아직도 증언대위에 서있는 저희들은 어떤 모습으로 당신의 이름을 닮아야합니까. 불러도 당신은 영영 대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방송인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어도 당신은 묵묵부답이십니다. 당신이 계신곳과 저희들이 있는 곳은 어디와 어딥니까.
증언대의 앵무새였던 당신은 속시원한 증언을 해주소서.
그러나 부질없는 소망, 당신은 우리곁을 버리셨습니다.
아니 주님의 부르심 앞에 복종하셨나이다. 부디 영생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