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를 추억하는 회고담 모음

내가 만난 최세훈 선생님 - 유병곤 목사님

최철미 2014. 6. 10. 02:25


최세훈 선생님은 30여 년 전에 우리 전주 송천 중앙 교회(현 예은교회)에 등록하고서 인연이 되었습니다. 저의 교회는 개척교회에 불과하였습니다. 개척교회였기에 교인수도 많지 못하여 교인 한 사람이라도 새 신자가 오면 기쁨으로 환영하며 한 식구처럼 가까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에 신흥고등학교 교목으로 근무하면서 교회를 개척하여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상당히 피곤한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최세훈 선생님은 저의 목회에 큰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에는 불신 가정에서 홀로 서기 신앙생활을 하여 왔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 신앙 가정에서 성장한 분을 몹시 부러워하였습니다.


아마 서울에 계실 때에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못하신 것 같았습니다. 다시 교회 안에 들어오셔서 열심히 하고져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달란트를 발휘하시지 못하고 소천하셔서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도리켜 보건데 저에게는 좋은 귀감의 대상이셨습니다. 그 바쁜 중에도 틈틈이 책을 즐겨 읽으시고 좋은 서적은 직접 가지고 오셔서 저에게 읽어보라고 소개해주셨습니다.
제가 학교 목회와 교회목회생활에 바쁘고 힘이 들었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큰 힘이 되어 주셨고 도움을 주신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이런 분을 오래 함께하지 못한 점 아쉬웠습니다.

최세훈 선생님은 가끔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소시적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부친께서 새벽에 교회 다녀오셔서 식구들을 다 강제로 깨워 놓고 가정 예배를 드리셨는데 잠이 덜 깨어서 죽을 지경이어서 어떻게 예배를 드렸는지도 모르게 끝나면 이불 속으로 다이빙하듯 들어간 경험이야기를 재미있게 여러 번 들려주셨습니다. 그 분의 어린 시절, 부모님이 물려주신 순수한 신앙의 힘이 그에게 일생동안 깊이 각인이 된 것을 볼 때에 어릴 때의 신앙 교육은 일생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가끔 성가대에도 함께하시면서 2,3년 동안 함께했던 좋은 추억을 남겨 주셨습니다.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그 때 어린 철미, 창원이 또 여동생, 승원이, 자녀는 초등학교에서로부터 중학생까지... 아직 어린 나이여서 힘들었지만 이젠 어엿한 4,50대의 청장년이 되어 흩어져 미국과 한국에 잘 살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월이 유수처럼 빨리 흘러서 저도 이젠 나이가 80이 가까웠습니다. 은퇴하고 이제는 조용히 살면서 전주 대학교와 비전 대학교 객원교수로 돕고 있습니다.
한 세상은 지나고 아쉬움만 남았습니다.
이제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예수님을 다시 만날 것을 믿음으로 기약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할렐루야!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디모데 전서 6:12) - 






아버지를 따라 우리가 전주에 낙향한 것은 1977년도.  아버지는 유병곤 목사님 댁 대청 마루에서 시작한 송천 중앙 교회의 개척 교인이었다.......  1979년에 송천동에 교회당이 세워졌고,  아버지는 교회 성가대원으로 봉사하셨다......


송천 중앙 교회는 전주시 송천동 예은 교회의 전신이다.  그 때보다 교인 수도 많이 늘었고 교회도 훨씬 커졌다......  전주에 갈 때마다 꼭 들러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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