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를 추억하는 회고담 모음

성우 윤미림님의 회고담

최철미 2014. 9. 1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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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한 아나운서들
1955년 내가 성우 강습을 받던 때부터 낯이 익은 아나운서들 가운데
최계환(崔季煥, 전 KBS아나운서실장, 전 명지대학 객원교수),
전영우(全英雨, 국문학 박사, 전 수원대학교 인문대학장),
최세훈(崔世勳, 전 MBC 아나운서실장, 시인) 씨가 떠오른다.
그 분들은 언제 어디서 만나도 편안한 미소의 모습이었으며
소박한 인품이 호의를 느끼게 했다. 

(중략)


그리고 아나운서 최세훈 씨는 시인이었다.
역시 문학도답게 그가 발표하는 글을 읽어보면
상당한 수준의 고급 지식을 흡수하고 있는 현대 지성인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보통 키에 살결이 희고 곱슬머리인
최세훈 아나운서는 1950년대 중반 내가 처음 방송국에서 봤을 때는
대학생 같은 젊은 얼굴이었다.
드라마 소개 멘트를 넣으러 스튜디오에 와서 남자 성우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에서도 문학적 분위기가 나왔다.
.
1966년 9월호부터 다음해 9월까지 월간 여상(女像)에
13회에 걸쳐 발표한 최세훈(崔世勳) 아나의 <ON AIR(방송중)>란
제목의 연재물은 짤막한 설명에도 일일이 연월일을 표시하는
성의 있고 정직하게 엮어진 글이었다.
매회 그 연재물에 붙여지는 작은 제목도 별미.
그가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얼마나 천직으로 생각하며
그 일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는
3회에 붙인 <말의 화가(畵家)라는 제목에도 잘 나타나 있었다.
핵심을 찌르는, 정말 너무 정확하면서도 아름다운 표현이었다.
그런 풍부한 감정으로 시어(詩語)를 창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사실이었다. 당시 아나운서들은
성격이 다른 여러 방송프로에 출연하면서
드라마 연기와는 또 다른 아나운서만이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함을 만들어내기에 최선을 다했다.
화가가 색의 조화를 살리면서 작품을 창조하듯이,
아나운서들은 음악해설이면 그 프로에 알맞은 무드와 정서를
이끌어내려고 잔잔한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원고를 읽었으며,
공개방송이면 또 방청객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연구를 했으며,
스포츠 중계에는 그 시간에 적합한
민첩함과 긴박감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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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에 연재했던 최세훈( 아나의 글은 <증언대의 앵무새>
(동화출판사, 1967)의 제목으로 묶어 단행본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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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모습의 아나운서들
그들은 방송국에서 의상도 늘 단정했으며,
말 한 마디를 해도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들이었다..
아나운서 가운데는 예능에 소질 있는 이들도 많아,
1957년 12월 정동에서 남산 중턱 예장동으로 방송국이 이사간 이후
멋진 새 공개홀도 마련되자, 연말에는 공개방송으로
성우들과 노래경연으로 아나운서들은 노래 실력을 과시해 보였다.
그럴 때 보면 무대에 나오는 아나운서들은
남녀 공히 노래를 잘 불러
듣는 사람들 귀를 마냥 즐겁게 해주었다.
.
최세훈 아나도 한번 스테이지에 나와 청취들에게 노래를 선사했다.
유호(兪湖)작사 박시춘(朴是春)작곡 <고향만리>는
1948년 현인(玄仁)씨의 히트곡.
훗날 리메이크되어 여러 유명가수들에 의해 불리면서
많은 팬들에게 애창되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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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 일제 말기, 우리 젊은이들이 작열하는 태양열 아래
숨 쉬기도 힘든 열대지방, 남태평양 보르네오 섬에
학도병과 징용으로 끌려가 내 나라에 다시는 살아 돌아갈 길 없는
생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밤하늘의 별들을 우러러
고향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노래는
듣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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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눈에 익은 너의 모습 꿈속에 보면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바닷가 저편에
고향산천 가는 길이 고향산천 가는 길이
절로 보인다
.
이미 고전가요에 속했지만 사람들 기억에 그리움을 남긴 그 노래를
남산 KBS 신축 공개홀에서 가수 아닌 젊은 최세훈 아나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열창, 노래를 들으면서
한 순간 방청석은 잔잔한 애수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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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훈 씨는 1962년 3월 <자유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할 때도
화제의 출발이었다. 시 분야 응모작품 682편의 경쟁에서
<수련(睡蓮 - 연꽃의 한 종류)>이란 작품으로 1위 당선.
당시 심사평에서도 다음과 같은 높은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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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대한 우아성과 예민한 감성을 나타내고 있어
자연물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는 것.
<주간방송> 1962년 3월 4일자 4면에 발표한
최 아나운서의 다른 시 <구전신석(口傳新釋)>에는
생명을 바라보는 시인의 진지한 사색이 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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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는 여호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인 새빨간 능금을 따먹고 아담에게도 먹게 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다.
그 죄로 그들 두 남녀는 에덴 낙원에서 쫓겨났다.
하나님 명령을 어긴 원죄로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인 인류는
땀흘려 일하며 근심 걱정 속에 살다가 죽을 운명을 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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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그 유명한 인간고행의 기원론을
두뇌회전이 빠른 시기의 20대 최세훈 시인은 <구전신석> 후반에서
다음과 같이 새로운 해석을 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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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내일의 비늘 돋친 몸둥이에
칭칭 휘감겨 곤두박질 치는 것도
배암의 잘못이 아니다
숨을 쉬는 죄다
( 一九六ㅇ년 )
.
아나운서 최세훈 시인은 글자 하나에도 세심한 배려를 했다.
시를 끝내고 줄을 바꿔 기입한 시작(詩作)의 연도도
읽는 사람 마음에 생각의 여운을 주었다.
1960년은 그의 시인 데뷔보다 2년이 앞선 시기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시사뷰 타임즈에 위 글을 쓰신 윤미림님께 정말 고맙고 감사해서 이메일을 드렸더니 답장을 해 주셨다.......  



"아버님께서는 참 착하고 성실하며
유능하신 시인이셨습니다.
고결하신 인품이셨지요."


"청년 아나운서 아버님께서는 라디오 드라마 앞뒤 소개멘트 넣으려고

스튜디오에 오사면 같은 연배 남자 성우들에게는

짧은 시간이지만 상대 하는 말에 모순이 있으면

거침없이 바른말도 잘하셨어요.

여자연기자들에게는 별로 말을 안하시고요. "




오십 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잊지 않으시고 아버지를 기억하는 좋은 글을 써 주신 윤미림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건강하셔서 앞으로도 좋은 글을 많이 쓰시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