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를 추억하는 회고담 모음

장기범 아나운서의 편지와 아버지의 비문

최철미 2014. 8. 26. 09:53

장기범 아나운서의 편지 – 아버지의 저서, ‘증언대의 앵무새’ 초판에 실린 서문

최세훈 아나,
당신은 광산과를 했다면서 금은 캐지 않고 잊혀진 지층을 발굴하고 있었구려. 일생을 날카롭게 투시하던,
당신은 언제나 사색하는 앵무새였습니다.
정동 고개에서 대망을 걸었던 성대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on AIR 의 불빛 저편으로 방산되었고 철탑 밑 우리들의 보람이 6.25에 불탈 때 사료(史料)가 될 모든 기록도 잔해조차 남지 않았는데 당신은 잿더미에 묻힌 역사를 광부처럼 파헤쳤습니다.
그리하여 과거와의 단층을 당신은 로프로 연결하는 힘든 작업을 마쳐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늘 의미를 되새기던 당신은 우리들이 저항하며 살아온 부조리의 세대를 지성으로 귀납하고 그 쓰라린 인간사의 실루엣을 예지로 연역(演繹)해서 빛나는 치금(治金)의 집적을 이뤄놓은 것입니다.
‘한 편의 시를 백 사람이 읽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번 읽어주기를 바란다’는 발레어를 당신은 늘 이용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집산지에 서식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 당신의 증언은 공감의 메아리를 불러 일으키고 아나운서들의 입김이 번져나가 하늘 위로 넓고 끝없이 퍼져갈 것을 믿습니다.

장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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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범 아나운서께서 써 주신 아버지의 비문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 세상에 나서
길지 않은 쉰 해 중에 서른 해를
방송에 몸담았던 아나운서
학같이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따스한 숨결처럼 이야기하던 시인
방송을 천직으로 알며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았던 사람
이제 부르심을 입고 소천하여
그의 육신은 여기 편히 잠드시고
그의 영혼은 천국의 안식을 누리며
부활의 그 날이 오면 일어나
빛을 발하리라


(장기범 아나운서와 우리 아버지는 서로 존경하며 아끼던 돈독한 선후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