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수필 모음

열리지 않는 문

최철미 2014. 2. 2. 10:49

열리지 않는 문

미녀가 목욕탕에서 노래를 하고 있을 때, 열쇠 구멍에다 눈을 대지 않고 귀를 대는 것이 진정한 음악애호가라는 말이 있다.
눈을 댄다고 해도 별 수 없다.
물을 끼얹는 미끈한 여체를 규시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틀림없는 애브노오말…정정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가라.
그러나 무방비의 나신일지라도 미녀가〈마음의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면 신사여, 당신은 참고 기다려야 된다.
인내는 낙원의 문을 여는 열쇠라던가?
목욕탕 문이건 마음의 문이건 문을 여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다.
꼭 맞는 열쇠를 구멍에 넣어 부드럽게 들리면 사르르 열리는 것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자물쇠를 피스톨로 갈기고 몸을 부딪쳐 부수는 것 이다.
오늘날의 대중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의 문을 첫 번째 방법으로 사르르 여는 것은 P·R이요, 깽 영화처럼 부수고 들어가는 것은, 반 P·R이라고 볼 수 있다.

쌍둥 짜른 머리칼로 세계를 지배한 요정 오드리·헵번, 그녀의 출세작이자 헵번·스타일의 남상이었던《로마의 휴일》에는 흥미 있는 다이얼로그가 있다.
단 하루만 평민으로 돌아온 왕녀를 몰라보고 신문기자 그레고리·펙은 묻는다.
『댁의 아버지는 무얼 하고 계십니까?』
『아버지는 왕이에요.』했다면 이 영화는 NG! 커어트.
광대뼈를 거느린 놀란 사슴 같은 눈을 깜빡이며 오드리·헵번은 장난스럽게 대답한다.
『으음…저어…PR의 일종이에요.』
그렇다. 오늘날은 군주도 P·R맨인 것이다.

PR이란 대중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만들어 사업을 번영하게 하는 기술이다.
목적지까지에 깔려 있는 오해와 몰이해와 반감 같은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좋은 세평과 상대방의 선의를 불러일으키고, 신뢰감을 품 게한 뒤, 협력과 지지를 얻게 되면 마침내 자타가 번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대중의 민주적 설득이라는 이 방법이 매스컴을 비롯한 근대적 의사전달매체를 통해 홍수처럼 밀려오는 현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기브·앤드·테이크」의 법칙이 작용한다.
주지않고 받으려고만 하는 것은 뿌리지 않은 씨앗과 같아 열매를 거두지 못할 것은 뻔하다.
그러나 반대급부에 의하지 않은 일방 통행이 얼마나 활개치고 있는가?
PR의 나이는 이제 환갑도 훨씬 지났다.
19○6년, 미국의 경제기자 아이비·리이가 그 시조.
당시의 실업가들은 신문을 매우 싫어해서 기자들은 취재에 고난을 느꼈다.
설득의 명수인 아이비·리이는 실업가들의 오해와 몰이해와 반감을 스무드하게 제거하는 실험을 했다.
우선 경제계의 단신을 신문에 실었다.
신문은 다채로워졌고, 독자들의 알권리는 충족되고, 따라서 사업에도 이득이 있음이 발견되어 아이비·리이의 실험은 민들레꽃처럼 퍼져 나갔다.
이러한「기브·앤드·테이크」가 산업안정을 꾀하는 경영기술로 자리 잡히자 기업PR은 국가 PR로 발전되어 갔다.
영국의 스에즈 운하 침공은 극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이른바 국책의 PR이 전연 없었다.
세계는 이 침략행위를 규탄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의회는 내각의 총 퇴진을 요구했고 송유관이 끊겨 개솔린 공황이 일어나는 등 그레이스·브리턴의「꿈이여 다시 한번」은 엘레지로 끊났다.
반면 에짚트의 낫셀은 아랍방송을 통해서『전 아랍민족이여! 단결하라』고 외쳐 침략에 대응하는 민족적 궐기를 촉진하고 마침내 영국군을 철수하도록 만들었다.
영국의 스에즈 운하 침공사건은 PR이 없었을 때 어떠한 국면이 벌어지는가 하는 전형적인 케이스로 예거되고 있거니와 그 반대의 경우가 PR의 역사에 빛나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종국에 이를 즈음 미국 오크리치의 한 공장에서 종업원들은「맨허턴 계획」이라고만 알려진 극비의 작업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히로시마에 버섯구름이 피어나고, 그것이 가공할 신무기 원자폭탄이라고 알려졌을 때, 그리고 또 그 원자폭탄이 자기들이 땀 흘려 일한「맨허턴 계획」의 소산이었음을 알게 됐을 때, 생산능률은 두 배로 불어났다.
나가사끼에 제2탄이 떨어지고, 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3배에 이르렀었다.
그러나 이 영광의 기록이 일본에게는 공포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사물에는 상반되는 두 개의 측면이 있다는 것을 파스칼은 다음과 같이 갈파한 일이 있다.
『피레네 산맥 이쪽의 정의가 피레네 산맥 저쪽에서는 불의가 된다.』
그러므로 진선미의 판단은 때와 장소와 양식과 인간적 양심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정책이건 개인의 방침이건 올바른 것이라고 판단되면 이를 당당히 발표하고, 정확한 자료를 들어 알기 쉽게 설득하고 지지와 협력을 얻으려 하면 대중은 이해하고 납득하고 신뢰하게 된다.」…는 PR의 정도가 오늘날 얼마나 굴절되고 있는가?
또한 첫째 봉사적, 둘째 민주적, 셋째 인본적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서 프로파간다와 구별되는 PR이, 오늘날 얼마나 선전과 혼동되고 있는가?

선의를 불러일으키고 신뢰감을 품게 하는 설득의 과정을 생략하고 브르도져처럼 밀어대는 일방 통행식 PR이나, 그 목적이나 방법에 있어 어느 한 가지라도 봉사적이 아니요, 비민주적이고, 휴매니티를 결여할 때, 대중과의 모든 관계는 원활해질 까닭이 없다.

또한 진정으로 자타가 번영하려는 목적이 명료하지 않은 이상, 대중의 지지와 협력은 얻기 어렵다.
대중은 오히려 마음의 문을 열기 커녕은 이를 굳게 닫고 지킨다.

대중은 현명하기 때문이다.
열리지 않는 문을 탓하지 말라.
당신의 열쇠가 녹슬었거나 맞지 않을 따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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