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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목청

최철미 2014. 2. 2. 11:18

클레오파트라의 목청

간질병자와 장군에게 차례로 수유했던 그 아까운, 아까운 젖꼭지를 독사에게 아드득 깨물려 목숨과 왕조를 끝막은 클레오파트라…역사에 분홍 칠을 한 이 BC시대의 마녀는 여성미의 극치였다 하거니와 그녀의 속성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반달의 눈썹, 샛별의 눈, 상아의 코, 앵도의 입술…이 아니라 비로오드처럼 야들야들한 목소리였다는 이설이 있다.

성대에서는 누구나 원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원음에 빛깔을 칠하는 것은 치아구강, 비강의 이른바 확성부─바이얼린의 몸통 같은 공명공동도 그녀는 아름다웠던 것일까?

크림빛 피부로 감싸인 팔등신의 내면 깊숙이 균정된 발성기관으로부터 그녀는 천부의 미를 목소리로 뿜어냈던 것이다.

인체는 악기…관악, 현악, 타악이 교향한다 하거니와 클레오파트라는 가장 잘 조율된 악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스칼의 가정대로『만약에 납작코였더라면』세계 지도가 달라지기 커녕은 시이저와 안토니오를 매혹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코─얼굴의 평원에 솟아 오른 산맥은 음색을 빚어내는 최후의 델리카시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도구로 삼는 직업인의 코를 보라.

그들의 성공과 코의 융기는 함수관계에 있는 것이다.

한국에 테에너를 수입한 고 현제명박사는 〈성악가와 음색〉이라는 수필에서, 목소리는 예쁜 사람들이 얼굴은 예쁘지 않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하고, 그러므로 보칼이스트로 대성하려면 우선 얼굴이 미워야 한다는, 자기변호 비슷한 역설을 펼쳐 놓은 일이 있었는데 물론 얼굴과 목소리의 아름다움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세계 추남최녀대회의 챔피언일지라도 맑고 고운 음성을 가졌다면 그는 첫째 성대가 건강하고 둘째 모든 공명기관이 해부학적으로 조화와 균형의 미를 갖추었을 것이다.

미성은 바탕에 지나지 않는다. 가수는 코류붕겐으로 이를 닦고 연기자는 아티큐레이션을 수련한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목을 아끼며 정상에 이르기 위해 늘 핏대를 세운다.

그러나 목소리의 기량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해 정체하거나 아예 좌절해 버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성대처럼 마음이 건강하고, 공명기관처럼 심성이 조화와 균형의 미를 갖추지 못한 때문은 아닐 것인가?

왜냐하면 목소리는 「마음의 가락」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폰은 이들의 예술만을 매개하지는 않는다.

메카니즘 이상의 신비로움은 이 비정의 쇠부치가 인간성까지를 여과한다는 데 있다.

그들의 놀라운 기교는 다만 감탄의 대상이 될 뿐, 예나 오늘이나 대중은 기계로 증폭되어 나오는 예술인의 목소리에서 무엇인가를 형수하려 한다.

채워지지 않은 빈 독과 같은 태세로 그들은 예술가의 애정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애정은 때로 아가페일 것이요, 때로는 에로스일른지 모른다.

마음속으로부터 대중을 사랑해야 한다. 위정을 간파하는데 있어 대중은 참으로 민속하고 현명하다.
특히 오늘날의 고독한 대중에게서는 1대1의 보이지 않는 교나을 희구하는 측면이 엿보이는데 여기에 탁월한 기량 보다는 모든 계층을 포용할 친화력이 우선한다는, 성대 노동자들의 당위가 성립된다.

친화력…이것은 그들이 살아 숨 쉬는 영역에서 파라마운트에 이끌어 줄 위대한 힘이요, 결코 하강과 몰락을 거부하는 에너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상실하면 아무리 그의 예술이 만개해도 그것은 백일홍이요, 머지않아 낙엽으로 조락할 기한부의 것임을 우리들은 너무나 많이, 너무나 똑똑히 보아왔다.

코파·카바나의 둥그런 전망대같은 이층 구석 복스에서 신인가수 M은 한숨 섞인 소리로 말했다.

『노랠 고만 둘까봐요…왜냐구요? 대인관계가 너무너무 어려워서요…』

성형외과의사가 적당히 과장해놓은 눈자위에 우수 같은 것이 잠시 서렸다. 국수처럼 눌러 빼는 나즉나즉한 목소리와 설익은 복숭아 같은 떫은 매력으로 데뷰한, 아직 파과기가 지났을까 말까한 이 아가씨는 자신의 슬럼프를 대인관계로 얼버무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스무고개도 넘지 않아서 뭘…』

처방을 내리는 밤 나그네의 목소리는 담배 연기 속에 힘없이 스러졌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의 그러한 개안은 아직도 순수한 것일는지 모른다.

콘택트·렌즈가 없으면 3미터 앞의 사람도 몰라보는 톱·싱거 K는『선생님』이라는 존칭을 산타·클로스처럼 뿌리고 다닌다.

『선생님!…안 그래요? 선생님!…그렇죠? 선생님!』

누구에게나 나는 제자이노라는 겸허와 진실이 그 어감에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웬일일까?

꽃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지표위에 심은 채 보는 이를 손짓하지 않는다.

그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사람들은 상찬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화는 다르다. 부자연스런 가식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교언영생하는 자는 불인이라는 케케묵은 어휘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구토증 같은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진가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한 조화도 세상에는 잇다.

화촉동방의 새악씨 같이 부끄러운 실눈과 두어달에 한 번씩 스켈링을 하는 치아를 아주 드러 내놓고 웃는 트레이드·마크로 미소정책을 쓰는 이른바 인간성 좋아 보이는 고액납세자들…

작위는 반드시 드러난다.

지금은 대낮에도 촛불을 밝혀야 할 만큼 어두워서 그렇지, 그들의 가면은 곧 헤어지는 날이 온다.

사랑하는체 하는 위정의 탈이 지겨워 그들 스스로가 벗어 팽개칠 것이요, 지금 그렇게 되어가는 과정을 우리들은 악을 쓰는 그들의 목소리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전파로 바뀌는 음성에는 이른바 호감특성곡선이라는 것이 있다.

한때 수많은 대중을 매혹했던 탤런트가 사련에 빠진 뒤로 그 곡선이 무너져 버린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마이크로폰은 민감하다. 따라서 대중은 더욱 민감하다.

신비로운 영매현상처럼, 예술뿐만 아니라 그 예술인의 전부까지를 촉매하는 소리통 앞에서 미성을 짜내려 안간힘을 쓰기 전에 마음을 닦아야 한다.

도야된 심성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만이 심금에 닿아 비로소 울릴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름다운 악기였을 뿐 좋은 악기는 아니었다.

만약에 그녀의 마음이 그 절세의 지체처럼 아름다웠던들 저「악티움 해전」의 쓰라린 패배도 없었을 것이요, 역사는 그녀에게 혹시 세인트의 칭호를 붙여 주었을지 누가 아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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