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수필 모음

도마도와 쌀

최철미 2014. 2. 2. 11:29

도마도와 쌀

도마도가 과일이냐 채소냐 하는 퀴즈에 지금의 중학생들은 거뜬히 정답을 낸다.

그러나 송진 따기, 방공호 파기 등의 근로봉사로 중학과정을 마친 일본어 해득층은 거의 오답을 한다.

하지만 당연하다.

철저한 통제 밑에서 먹고 살이를 배급에 의존했던 식민시대에 도마도는 선인이 먹는 청과물은 아니었다.

월남에서 사과가 진과로 여겨지듯 남만시라고도 불리 우는 일년감은 아주 귀물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슬픈 희소가치였다.

가지과의 일년생 초목에 달린 이 열매는 비타민 A, B, C, D가 다 들어 있다는 채소의 일종.

그러나 먹는 자유조차 없었던 「빼앗긴 들」에서는 도마도가 진귀한 과일이었다.

영양실조의 조국에 미군이 진주하자 군정장관인「제너럴 하지」는 쌀만 먹지 말고 계란이랑 사과랑 먹으면 될게 아니냐고, 식량문제 해결여부를 묻는 기자 질문에 위대한 경륜을 폈다.

지당하신 말씀이었다.

그러나 쌀은 공출이다 토지 상환이다로 나라에 바치는 것, 계란은 모았다가 학비로 바꾸는 것 그리고 사과는 제삿상에서나 구경하는 보물이라는 한국적 의미를 이 버터로 기름진 아메리칸은 체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곧 기아로부터의 해방일 수 없었던 코리아에 봄이 오면, 아직도 쌀을 만드는 사람들이 넘어가야 하는 고개가 있다.

이른바 맥령……

절량의 위기가 생존을 위협하는 가파른 비탈이다.

그래서 한국의 방송에서는 또 하나의 금기가 생겼다.

국경을 넘어 온다는 말, 선수권이나 기록을 갖고 있다는 한문숙어가 비록 이의동음이지만, 불결한 인상을 준다고 해서 사용되지 않는 것처럼, 전체의 분량이라는 뜻의 전량도 좋은 말이 아니라고 해서 전체량으로 바꿔 쓰고 있다.

ㄴ이 ㄹ위에서 ㄹㄹ로 이어 바뀐다는 소위 자음접변으로, 전량은 절량으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슬픈 타부이다.

적어도 도마도쯤은 식탁에 풍성하게 오르는 채소로 상식하게 됐으면, 그리고 닿소리의 이어 바뀜이야 어떻든, 쌀과 관계되는 방송의 타부는 깨뜨려졌으면 하는 식이위천의 한 백성의 바람을, 조국의 근대화에 붙여 본다.

<196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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