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최세훈/아버지의 수필 모음

단골집

최철미 2014. 2. 8. 09:49


한결같이 정결한 반상
입안서 녹는『경향』집 산적
단골집


어항 속의 담수어처럼 회유하는 반경이 작고 일정해서 먹고 마시는 것은
방송국 언저리에서 해결한다.

휘발유 떨어진 자동차가 주유소를 가릴 것인가.

그런데 격식을 갖추어야할 때는 인사동 결혼 시장 입구『경향』으로 행차한다.

자유당 때는 문을 열지 않았으니 폐업이나 휴업한 일은 없고 목하 성업 중. 단청 같은 현란한 의장이 없어 누님네 집 같다.

(사실 누님 같은 두 여사장이 경영하지만)- 반상에 오르는 것은 한결같이 정결하고 그 맛은 담백하다.

꼬챙이에 꿰지 않고 네모 반듯 「모자이크」처럼 받쳐 놓는 산적은 입안에서 저항 없이 사르르 녹고, 조강지처처럼 내 살 같다.

식흥을 돋구느라 마지못해 끼어드는 기생(?)도 안계시고 또 계산에도 엉큼한 꼬리가 붙지 않으니 얼마나 깨끗한가?

현작들이 소곤소곤 담합하지 않은들, 한량들이 바둑알을 굴리며 유유자적하지 않은들 단골로 자유로이 드나들 텐데….

그 황전족은 소시민을 위하한다. 그러나 흑자가 나는 것은 그들 때문, 우리는 여덕을 입는 셈인가. 최근엔 별관까지 냈으니『각지』라는 이름이나 하나지어 줄까한다.

경향 (각지) 에서 나오면 차는『무아』,  좋은 것은 찻집의 이름과 미운 여자뿐. 예쁜 여자가 있으면「포마드」쳐바른 대강이들이 술렁대고, 나도 환관이 아니니 예수님 엄포처럼 마음으로 죄를 품을 텐데 하나같이「펌프킨」이라 마음 가볍다. 소리에 대한 포만 때문에「볼륨」낮추라는 실랑이가 하기 싫어 요즘은 잘 들르지도 않아 『무아』에는 정말 내가 없다.



                                                                                                                        (1966년 대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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