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주 찬
바다가 그의 근육을 자랑할 때, 무늬져 밀려온 물결이 기슭에 쏴아 부서지며 이루는 우윳빛 거품······ 그것을 나는 맥주 한 잔에서 느낀다. 용기에 따르어진 맥주는 유폐된 바다. 누구에게나 영해권이 있다.
백조의 깃털 같은 모자를 입술로 제치면 혀끝에 와 닿는 짜릿한 첫사랑, 그렇다. 첫사랑은 아름다운 시행착오, 떫은 고뇌를 둘러싼 분홍빛 당의정과 같은 쓰고 단 초련을 맥주의 첫잔은 상기시킨다.
얼마나 애틋한 모정의 계절이었던가? 또, 얼마나 쓰라린 애종이었던가?
그 미숙한 정사에의 회한을 짓씹듯 벌컥 벌컥 서너 모금 마시고 나면 누구나 지르는 환성 “아 시원하다.” 원초의 사나이가 금단을 깨뜨리고 질렀던 소리·····.
그리고 그 정감은 <릴케>가 읊은 바, “날마다 새로운 규방의 영위”처럼 권태가 없다.
고대 이집트의 「라미즈」2세는 맥주를 존중하고 신성시한 나머지 해마다 신에게 30,000갤런 씩 헌주했다는 기록, 또 U.S.A의 아버지 조오지·워싱턴이 이 액체의 빵 제조업에 사적인 관련을 가졌다는 설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잔을 들면 첫사랑은 잊혀지고, 위로 전해지는 유쾌 지수. 위를 가진 동물이라는 현실복귀와 함께 살아 있다는 기쁨이 혈관을 충만 시킨다.
태양이 싫어 갈색 병 속에 도사리고 있던 이 미혹의 액체와 입맞춤을 거듭할수록, 다섯 자 남짓의 체적은 청량의 대해를 포용하고 마침내 일렁이는 도연의 물결, 해조음 같은 대화가 비워지는 잔 위에 꽃핀다.
(1965년 OB뉴스)